실로 오랜만에 소설책을 완독했다.
1998년도 3개월간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을 꽤나 읽었었다. 그 이후로는 아주 간혹 소설책을 건드려 보긴 했으나 매번 완독하지는 못했다.
주로 전공과 관련된 책이나 자기계발서, 인문학 서적, 역사와 관련된 책을 위주로 읽어 왔었다.
우연히 큰 애가 다 읽고 책장에 꽂아준 것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확실히 소설책 답게 흥미롭고 술술 읽혀지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삼분의 일 정도 읽다가, 늘상 하던데로 어딘가 던져 놓았다가...
어디선가에서 본 소설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설책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해야 한다"
공감하며, 다시 꺼내어 다 읽게 되었다.
인문학 책은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소설책 특유의 평이한 문체에 내용까지 흥미로우니 한번 읽기 시작하면 좀체 멈추지 않는다.
간만에 소설책을 완독하고 흥미를 가지게 되어 기쁘다.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을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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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주 저 | 예담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을 기반으로 사람의 올바른 길을 안내하고 충고하는 책이다.
타고난 천재이면서도 평생의 깊은 공부와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한 율곡.
현 시대의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이러한 옛 성현의 위대한 삶의 발 끝이라도 따라 가겠는지 원....
그의 사상과 철학, 학문과 개혁정신, 절제를 흠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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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세치 혀의 가벼움은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튼 칼'
"말을 신중하게 하라. 배우는 사람이 선비의 행실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사람의 잘못은 말에서 말미암은 것이 많으므로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정성스럽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율곡전서
현명한 사람의 입은 마음속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입 안에 있다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한 내용에서 '살아서도 유익함을 주지 못하고 죽어서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라는 인상적인 구절이 매우 와닿는다.
"대우(중국 하나라의 시조 우임금)는 성인이지만 촌각 같은 짧은 시간도 몹시 아끼셨다. 그러니 우리 보통 사람들은 촌각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한 푼만 한 시간이라도 아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한시를 편안히 놀고 술에나 취해서, 살아서도 이 세상에 유익함을 주지 못하고 죽어서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단 말인가. 이는 스스로 자기 몸을 버리는 것과 같다." - 도간(진나라 무장)
독서는 지은이의 정신세계와 그의 시대와 사상으로 들어가는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독서를 하는 중에는 어떠한 현실의 고뇌와 문제라도 모두 잊어버린다는 독서광들이야 말로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독서는 여행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렇듯 옛 성현의 자취와 행적이 담긴 책을 살피지 않고 홀로 사물의 진리와 세상사의 이치를 밝히겠다는 것은, 방 안에 쌓아둔 보물은 내팽개쳐 둔 채 온갖 고생을 하며 밖에서 보물을 찾아 헤매는 꼴이나 다름없다.
"하루에 두 시간만이라도 다른 세계에 살아서 그날그날의 번뇌를 끊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육체적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만한 특권을 얻는 것이다." - 사마천
독서의 가치는 단순히 읽는 것에 있지 않다. 읽고 고찰하고 실천할 방도를 찾을때에야 만이 독서의 유용함이 현실화 되는 것이라는... 정말이지 스스로 반성할 대목이다.
'중용'에 보면 독서를 하는 5가지 방법이 나온다. '박학/심문/신사/명변/독행'이 그것이다.
'박학'은 두루 혹은 널리 배운다는 의미이고, '심문'은 자세히 묻는다는 것이다. 또한 '신사'는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명변'은 명확하게 분별한다는 것을, 그리고 '독행'은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만히 앉아 글자만 읽거나 그 안에 담긴 지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여 실천하는 것 모두가 독서에 해당한다.
율곡의 개혁의지에 별 반응이 없던 선조에게 많은 실망과 허망함을 느꼇을 것이다. 그이 이런 마음을 잘 대변하는 구절이라 하겠다.
"임금이 공경과 예를 다하지 않으면 도덕을 갖춘 선비를 만날 수 없고, 간하는 말을 듣고 따르지 않으면 신하로 삼을 수 없으니 임금은 마땅히 정성을 미루어 임무를 맡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략) 후세의 임금은 현자를 좋아할 줄을 알지만 좋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직위와 녹봉으로 붙들어두기는 해도 현자의 말을 쓰지 않아 그의 진퇴를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고, 명분만 좋아하고 실제는 추구하지 않아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맡겨서 일을 그리치고 지조를 잃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자가 그 총명함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그가 가진 재능을 적합한 곳에 사용하며, 그를 믿어 성실하게 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참으로 현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학집요, 위정 상
가정사에서도 서로가 화목하게 지내기 위한 규율을 일일히 규정하고 실천하였다고 하니...
"기뻐할 일이나 싫어하는 일이 있더라도 치우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항상 부드러운 얼굴과 온순한 말로 대해야 한다. 타이르거나 꾸짖을 일이 있을 때에는 절대로 성내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밖에서는 결코 헐뜯거나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참소하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혹시 이간질하는 자가 있으면 노복은 매를 때려서 경계하도록 하고, 첩은 엄하게 주의를 준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즉시 내보낼 것이다." - 동거계사
마지막으로 현 시대 사람들에게 더욱 귀감이 될 만한 문구 하나 발췌하고 마무리하자.
스스로 고상한 것이나 전문적인 것을 취한다고는 하지만 그 근본은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과 문어발식 관계의 허영심이라면 진정하다 할 수 없으며,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므로 근본의 일치는 억지로 붙들여 매려 하지 않아도 서로가 묶이게 되는 것이다.
"소리가 같은 사람끼리는 서로 호응하는 법이고 기운이 같은 사람끼리는 서로 찾게 마련이다. 만약 내가 학문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문하는 선비도 역시 나를 찾을 것이다. 겉으로는 학문을 한다고 하면서도 문 앞에는 잡된 손님들이 많이 출입하고 떠들썩하게 세월을 보내는 사람은 실제로 그가 즐기는 것이 학문에 있지 않은 때문이다" - 격몽요결, 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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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저
온라인 서점의 추천 책 링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된 저자의 몇 가지 저술들과 추쳔평 들...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지만 그의 저술을 접해본 적은 없었던 듯 하다. 검색을 좀 더 해보니 저자는 작년에 작고하신 것으로 나온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들며 그의 책과 그의 글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50살의 문턱앞에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회고한 자서전 같은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은 아직 접하진 못했으나 그의 가장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았나 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10년에 한번씩 이런 형태의 개인의 역사를 출간하려고 싶다고 했으나 60의 문턱앞에서 세상과 이별했으니 그의 또 다른 10년을 듣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는 개인이 역사는 그 스스로가 기록하고 편찬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가 남겨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개인의 역사를 스스로 재 조명해봄으로으로써 미래를 올바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중략)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중략)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기질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적잖이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의 기질의 많은 부분에 나의 기질을 엿볼 수 있어 그러할 것이다. 사소하게는 의자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부터...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특히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은 저술가, 대학교수, 예술인, 카운슬링 또는 컨설팅 등이다.
그의 20대와 30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잘 나가는 외국계기업에서 20년을 근무한 저자는 자신의 직장 경험을 살려 변화경영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40대를 보냈다. 책의 제목과 같이 마흔세 살에 불현듯 스쳐간 생각을 시작으로 저술을 하기 시작하고 1인 기업인, 강연자, 저술가가 되었다고 한다.
1997년, 마흔세 살이 되는 여름 어느 날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 달 동안 포토 단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새벽에 깨어 일어나 앉았다. 아마 배가 고파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같다. 잠이 깼지만 그대로 눠워 있었다. 날은 천천히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할 일 없이 하루를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누워 있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없었다. 하루는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었다.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즉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많은 현인들이 남긴 글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저자의 의견도 일치한다.
그가 말하는 자신만의 하루의 일부를 소개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팁도 알려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잇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직장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대목에서는, 현실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정당화의 방패로 삼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들의 애환을 잘 아는 나는 왜 밖에서 작지만 독립적인 회사의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떠나온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확보하는 순간 과거 생활을 장점들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아무런 소속감이 없었다. 안전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어졌다. 매일 지겹도록 만나면서 미운 정 고운정이 든 동료들도 사라졌다. 내게 정규적으로 '먹이를 주던 손'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면 가야할 곳도 사라졌다. 생명보험도, 자녀교육비 지원도, 의료보험도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지출되었다.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었던가!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저자는 죽음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죽음 앞에 허망한 꿈같은 과거를 미리 되새기는 정신적 여행을 하여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으라 강조한다. 그가 이미 작고하여 이 충고는 더욱 값진 소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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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저/정영목 역
도서관에서, 딱히 정한 책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이다.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저자의 이름과, 심플하지만 왠지 심오할 듯한 책 제목에 끌려 그 자리에서 잠시 도입부를 읽어 내려갔다.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적잖이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내용과 저자가 풀어놓은 독특하고 개성있는 문장과 구성에 감탄하여 빌려오게 되었다.
책은,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안을 주제로 다룬다.
세속적인 삶에서의 지위를 갈망하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그 갈망의 양만큼 더 커질수 밖에 없는 불안의 측면을 예기한다. 불안이 생기는 근원적인 원인을 통찰력있는 글과 인용으로 풀어나가고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인간 삶의 궁극적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하는 철학, 예술, 종교적 사례와 접근법을 소개한다.
책은 먼저 지위를 정의하면서 출발한다.
- 협의의 의미, 그러나 사전적 의미: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
- 광의의 의미, 그러나 실제적 의미: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농담이 썰렁할 때도),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높은 지위를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놓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런 지위를 갈망하면서 생기는 불안을 안내(?)한다.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이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도입의 마지막으로 책을 쓴 동기를 설명한다.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안정적이고 높은 지위와 부를 바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며 때론 성공의 축배도 들지만 (그 보다는 더 자주) 실패의 쓴맛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삶속에서 인간은 항상 불안을 느끼게 되며 삶의 궁극적 가치를 망각하여 인생 전반을 자신도 모르게 암울하게 살다 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뭔가 거창한 해법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구문에서 저자의 집필 동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도입을 지나, 불안의 원인을 5가치 측면에서 설명한다.
1. 사랑결핍, 2. 속물근성, 3. 기대, 4. 능력주의, 5. 불확실성
사랑결핍이라??
불안의 요인으로 제시한 5가지 중, 목차만으로는 쉬이 이해하기 힘든 제목이었다.
높은 지위 즉 돈, 명성, 영향력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중에서도 사회적 사랑을 말한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위와 관련된 사랑을 받는 사람 역시 낭만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눈길을 받으며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중략)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듣고, 미묘한 개성은 짓밟히고, 정체성은 무시당한다. 낮은 지위가 끼치는 영향은 물질적인 맥락에서만 볼 수 없다. 낮은 지위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들을 낳기 때문이다.
낮은 지위로 인한 물질적 불편함보다 정신적 고통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높은 지위가 주는 유익은 물질적 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부자들 가운데는 다섯 세대가 써도 남을 만큼 돈을 축적해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모으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부의 창조를 경제적인 이유만 가지고 설명하려 할 때에만 그들의 노력이 이상해 보일 뿐이다. 그들은 돈만큼이나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존경을 추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글을 인용한다.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탐욕과 야망을 품고,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생활필수품을 얻으려는 것인가? 그것이라면 노동자의 최저 임금으로도 얻을 수 있다. (중략)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원인인 속물근성.
속물근성은 아주 적은 예외를 제외한다면 누구에게나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는 속물근성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살고 있는 듯 하다.
속물 집단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죄절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는 즉, 우리의 지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멍청한 아첨꾼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권력이나 명성 때문에 당신을 사귄다고 말하지 않는다. (중략) 유능한 아첨꾼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상대의 지위와는 전혀 관계없는 부분임을 암시해야 함을 안다. 그래서 으리으리한 차, 신문에 등장한 모습, 회사의 임원직위는 자신의 깊고 순수한 애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소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첨꾼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그의 반지르르한 표면 밑에서 변덕스러움을 감지하고 속물의 무리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속물근성이 자연스레 인간의 본성처럼 굳어져 가는 것은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과 같은것 일수도 있다. 주변에 늘 마주하는 사회적 상황이 속물근성을 부추긴다는 새커리의 신문에 대한 비판이 무엇보다 와 닿는다. TV프로에 연예인들의 아주 사소한 신변잡기가 뉴스나 화제거리로 매체에 소개될 때 난 새키리와 비슷한 느낌을 늘 받아왔다.
새커리는 영국인이 높은 지위와 귀족계급에 매달리는 원인이 궁극적으로는 신문에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매일 작위가 있는 사람과 유명한 사람이 존엄한 존재라고 역설하는데, 이는 결국 작위가 없는 보통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역설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중략)
<모닝 포스트>의 궁정란을 보면, 브로엄 경이 브로엄 홀에서 사냥 파티를 열었다는 기사("모두 많이 잡았다"), 애그너스 더프 여사가 에든버러에서 출산할 날이 다가왔고, 조지너 폐이큰햄이 버글리 경과 결혼했다는 기사("신부는 레이스 주름 장식과 코르사주 몽탕을 갖춘 우아한 하얀 새틴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가 어여뻐 보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등이 눈에 띈다.
"이런 같잖은 기사들이 눈엎에 놓여 있으니 어떻게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커리는 말한다. "속물근성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신문을 타도하라!"
얼마전 모 출판사 대표님과 대화 중, 대략 중학교 정도 되는 나이 또래에서 연예인을 지망생이 엄청나다는 예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주변엔 그 나이 또래가 거의 없어 직접적으로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그 분 주위엔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라 하니, 이 역시 대중 매체가 부추겨 놓은 비뚤어지고 편합한 선망, 사회적 현상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등장과 사회의 급속한 발전, 그에 따른 기대 특히 상대적 기준에 따른 만족감의 차이를 설명한다. 언젠가 직장인들의 연봉 만족도는 절대적인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동료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는 것에 좌우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또한 평등해진 사회가 가져다 주는 기대와 그에 따른 패배감을 소개한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1651)에서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생과 운에 따른 모든 특권을 폐지했을 때, 모든 사람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누릴 때, 야망이 큰 사람은 위대한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 금세 교정되고 마는 망상이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자존심은 이룬 것을 목표한 것으로 나눈 것이라는 제임스의 방정식을 소개하며 이 방정식에 의하면 행복해 지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즉 목표한 것을 이루도록 더 노력하는 방법과 목표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정식을 제시한 제임스는 두 번재 방법의 장점을 지적한다고 한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이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신해지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우린느 말한다. '다행이야!. 그런 환상들은 이제 사라졌어. '자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부담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능성의 시대에 등장한 능력주의! 능력주의가 가져다 주는 불안의 측면을 예기한다.
(중략)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위는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불안에 대한 요인의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을 언급한다.
자신의 변덕스러운 재능, 운, 고용주와의 관계와 그의 이익, 세계 경제 등 다양한 요소들을 소개하며 이러한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감을 설명한다.
책은 전체적인 글의 흐름을 살짝 방해할 정도로 세부 주제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데, 이 단락에서도 '음침한 정치적 기술'이라는 것, 15~17세기에 궁정사회의 명민한 귀족들의 정치적 처세의 언급을 소개한다.
"사람은 거짓되고, 음험하고, 기만적이고, 교활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탐욕스럽고 남의 이익에는 둔감하므로, 적게 믿고 그보다 더 적게 신뢰한다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구이차르디니)
"세상은 장점 자체보다는 장점의 표시에 보답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라로슈푸코)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안 한다. 그저 당신의 주군과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 (라브뤼예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사랑은 감사의 유대에 의해 유지되지만, 사람은 지나치게 이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이 유대를 끊어버린다. 그러나 공포는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되며 이것은 늘 효과적이다." (마키아벨리)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된 책은 앞서 불안의 5가지 원인을 한 장에 걸쳐 설명하고 두 번째 장이자 마지막 장에서는 불안의 해법을 소개한다. 역시 5가지로 구분하면서..
1. 철학, 2. 예술, 3. 정치, 4. 기독교, 5.보헤미안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어떻게 보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인간이라면 본성에 가깝게 자리잡은 사회적 인정과 부, 명예와 영향력과 같은 포괄적 지위에 대한 갈망에 파생될 수 밖에 없는 불안을 단방에 해소시킬 은탄환이 존재할리 없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더욱 해서는 안될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보다 근원적이다.
철학!. 이 얼마나 어린 시절 관심없던 주제였던가. 사실 사회적 성장을 목표하여 나름의 노력을 해 오던 나에게도 가장 직접적인 안식처(?) 된 것이 바로 철학이다. 물론 지금도 완전하지 못한 인성과 사회적 선망을 위애 어찌보면 헛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철학책과 옛 성인들의 격언과 그들의 생활을 듣고/보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황폐한 정신을 가졌을 것이다. 그나마 읽고 음미했던 철학적 메시지들이 중용을 미를 지키려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하게 된 계기라 할 수 있다.
철학은 공상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이성적이라 할 수 있다. 시대적 상황, 사회적 상황, 상대적인 상황 등에 따른 변덕스러운 가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가치를 이성이라는 도구로 걸러내도록 하여 내면의 평화와 자존감을 올려 준다.
염세적 태도의 전형적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다음의 말은 이러한 맥락의 좋은 본보기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려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철학 다음 해법으로 예술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위대한 예술을 특히 고전 예술을 접해보거나 관심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예술은 철학 못지 않게 삶의 본연을 들여다 보게 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위대한 영화도 현세에서는 위대한 예술작품에 버금가는 매체일텐데 영화에서 배우는 많은 삶의 본질을 떠올려보면 과연 예술이 정신 건강에 주는 긍정적 효과를 알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는 (직접적이든 아니든) "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중략)
그들이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현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비극과 희극 역시 불안을 경감시키는 예술의 측면으로 소개하는데 먼저 비극을 보게됨으로서 느끼는 주인공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반성이 자만심을 버리도록 돕고 출세지향적 사고의 틀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얻게 만드는 수단은 늘 변화해 왔다. 불안의 해소로 소개한 것들중 '정치'가 있는데 좀 생뚱맞다. 그러나 저자가 선정한 정치라는 개념은 다음 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사는 사회의 이상 때문에 불안이나 실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충 살펴본 지위의 역사에서도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간파할 것이다. 그런 이상이 돌로 만들어져 굳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글을 통해 변덕스러운 정치적 가치에 한계를 인식하고 궁극의 가치 실현에 관심을 가진다면 적잖이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볼수 있다.
다음으로 '기독교'를 든다. 좀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보면 '종교'가 될 수도 있겠다.
결국 그의 의문을 가라앉힌 답은 신이었고, 톨스토이는 여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살게 된다. (중략) 이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더 진정한, 더 의미 있는 길의 안내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중략)
이런 소멸의 전망에 위로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불안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기획과 관심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과 그들의 사상/가치를 소개하며 세속적 가치를 다르게 해석하는 또 다른 집단의 사고체계에서 보편적 진리처럼 과대포장되어온 사회적 지위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고 힌트를 주는 듯 하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살고, 옷을 입고,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 이제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말자... 이 시대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을 모욕하고 질책하자."
서서히 저저의 결론에 도달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저자 역시 인정하며 다만 선택하라고 충고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악,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각 항목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중략)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개구리에게 우물안 세상만이 전부인 것 처럼...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현재 자신이 속한 집단과 그 집단이 해야 할 일에 파묻혀 있다 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그 속에 견고히 자리잡고 있는 편협한 사회적 가치에 갈망하고 괴로워하는 우리 자신을 드물게 목격하게 된다.
정신이 그나마 조금 풀린 주말 산책 길에서 혹은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논하는 책을 볼때, 교양의 테투리에 포함된 음악을 감상할때, 뛰어노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절대적 신임의 눈망울 속에서.... 간혹 무엇을 위해 이 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사회적 가치와 그에 대한 열망은 늘 우리의 정신을 잠식하는 강력한 지배주로 견고히 다시 자리잡게 된다.
책의 저자도 예기했듯이, 사회적 가치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하지 않으며 그 가치를 위한 고군분투의 아름다운 측면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가 인생 전반에 끼어들어 정신적 황폐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한다면 가치의 다양성을 재고하고 인간/인생의 궁극적 가치를 들여다 봄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다독여 주어야 한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풍족한 물질적 부의 중요성 못지 않게 정신적 부와 인간적 지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보다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 그리고 영향력과 물질적 풍족함을 위해 내가 가진 능력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
그 가운데 얻게 되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도 절망감 없이 받아 들일 것이다. 다만 가장 명심할 것은 내가 열심히 해 왔다는 증거는 반드시 남겨야 겠다. 그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다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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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저/박석무 역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를 모아 엮은 책으로, 18년이라는 긴 세월 유배지에서 아들, 형, 제자들에게 쓴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대학자로써의 그의 면모는,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 난 것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무엇보다도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일종의 홍익인간 정신이 뿌리깊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며, 그렇기에 그 힘들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학문을 연구하고 많은 저작물을 남기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아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모함으로 인해 죄를 받아 유배 생활을 하게 된 정약용은 편지 곳곳에 자신의 가문을 폐족이라 칭하며 두 아들에게 폐족으로서 과거시험을 통한 입신을 못하겠지만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후세에 도움이 되는 저작을 통해 학자는 되지 못하겠느냐며 많은 충고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아버지와 스승으로써의 자상함과 엄함, 선비로써의 지조와 절개, 학자로써의 깊은 사유를 갖춘 정약용을 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였으며 학문을 추구하는 방향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 등 수백년 전 현인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새벽예찬 저자의 삶에서도 그려볼 수 있는 학문과 사색, 자연이 다 함께 어우러져 불현듯 터지는 통찰에 대한 글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 있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두 아들이 곤궁에 처한 가족을 안타깝게 여겨 성실히 돌봐주는 일가친적이 없다고 원망하는 편지를 보고는 오히려 두 아들에게 먼저 남을 위해 제대로 헌신해 왔는지를 따져 묻고 보답 받을 생각과 원망할 생각을 하지 말것을 충고한다.
그리고 아들이 정약용에게 조정의 힘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죄를 면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겠냐는 예기에 발끈하며 엄중하게 꾸짖는다. 짧은 글이지만 그이 지조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림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때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는 경우이다. 이제 너는 내가 필천 홍의호에게 편지를 해서 항복을 빌고, 또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결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 깃을 해야겠느냐.(중략)
사람이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면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는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에 외침이 있어 난리가 터질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투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독서와 초서, 저술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가르침을 전하며...
.....
초서(鈔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남의 책에서 간추려내야 맥락이 묘미가 있게 된다. 만약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곳이 있을 때는 별도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넣어야만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고기 그물을 쳐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게 마련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두 아들에게 근면하고 검소함을 생활의 신조로 삼으라고 당부한다.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말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을 저녁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중략)
검(儉)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해도 볼품이 없어지지 않는다. (중략)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린다. 삼키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중략)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중략)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유하고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이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글자 아니고는 손을 댈 곳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
그리고 영암군수직을 맡은 제자에게 자리보전에 연연해 하지 말고 올바는 관리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
상관이 엄한 말로 나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리가 조작한 비방으로써 나를 겁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상이 부탁으로써 나를 더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릇 봉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지 않는 자는 하루도 수령의 지위에 앉아 있으면 안된다. 흉년에 백성들의 조세를 면제해줄 것을 요구하다가 상관이 들어주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가며, 상사가 요구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거절했으나 알아듣지 못하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가며, 나의 예모에 손상이 생기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간다. (중략) 만약 조마조마하고 부들부들 떨기를 구슬을 품은 자가 힘센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하여 오로지 빼앗길까 두려워한다면, 역시 그 지위를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긴 유배생활에 몸이 상하고 기력이 쇠하여 이런저런 병이 들고서도 독서와 저술활동을 그치지 않은 대학자로써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구절을 발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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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새벽의 그 잔잔한 기운과 곧 뿜어져 나올듯한 움크린 기상을 좋아하지만, 이런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 책의 도입에 공감가는 글을 만나게 되었다.
"새벽,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시각 ...
... 그 깊고 푸른 심연 속으로 들어간다."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벗삼아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한 문필가의 생활과 생각의 단상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잔잔하고 소박한 내용속에 세상과 삶에 대한 통찰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고 꼭두 새벽에 기침하여 명상과 따뜻한 차로 하루를 시작하고, 소박하지만 깔끔한 음식과 자연을 벗삼은 풍요와 홀로 지내는 이의 적막함, 그 경험과 사색으로부터 얻어지는 삶의 크고 작은 통찰의 시와 글로 차곡차곡 쌓아 두는 삶... 적잖이 동경이 된다.
그것은 의식을 앞질러 예지와 직관이 번개처럼 터져 나오지요.
개인적으로 명상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고 싶지만 내공이 한참이나 모자란지라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이 글을 보며 나는 오히려 이성의 억제력이 아니라 이성의 현란한 방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저자의 삶을 가만히 그려보니, 동경되는 마음은 여전하나 실제로 내가 그런다면, 그 적막함과 고독감은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어느 방문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건 이미 저자의 내공이 범인들이 말하는 외로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라 본다. 처음 시골에 혼자 삶을 꾸려 지내기 시작할 때 자욱한 안개에게서 느낀 그의 글에서 (어쩌면 심하게 공감되는) 그의 고독감을 엿 볼 수 있었다.
저자 역시 젊은 시절 방황과 비루한 시절이 있었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길로 들어선 용자라 하겠다.
30여 년을 날마다 쉬지 않고 조금씩 써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출판 일로 15.6년의 세월을 보낼 때에도 제 머릿속은 써야 할 것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출판 일을 접자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문학 때문이지요. 제 글쓰기는 존재와 언어에 대한 탐색입니다. 어쩌면 그 이전에 피의 불가피한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죠. 뭔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참 한심했었지, 그때 아무것도 / 이룬 것이 없고 / 하는 일마다 실패투성이었지 / 몸은 비쩍 말랐고 / 누구 한 사람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 내 생은 불만으로 부풀어오르고 / 조급함으로 헐떡이며 견뎌야함 했던 하루하루는 / 힘겨웠지, 그때 / 구멍가게 점원자리 하나 맡지 못했으니 // 불안은 나를 수치로 찌르고 / 미래는 어둡기만 했지 / 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 / 있었을까, 내가 / 바닷속을 달리는 등푸른 고등어처럼 /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 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 /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줄도 몰랐지 //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무지로 흘려보내고 / 그 뒤의 인생에 대해서는 /퉁퉁 부어 화만 냈지
세속을 빠져나와 얻을 수 있었다는 것들의 놀라움이란...
저자는 니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난 니체를 감히 논할 정도로 그의 저작물을 많이 접해보지도 못했으며 더욱이 그의 철학과 사상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듣기로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저작물에서 감명과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만큼 그의 철학에도 관심이 많이 간다.
니체는 정신의 세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애라는 은유를 써서 설명합니다. 낙타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묵묵히 그 짐을 짊어집니다. 사자는 기존의 관념과 체제를 깨고 나아가는 질풍노도의 시기, 자유를 향한 발랄한 투쟁의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죄없이 순진무구한 긍정의 시기, 새로운 삶을 빚는 가능성의 단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의 첫 번째의 단계에서도 아무 불행감 없이 잘 살아갑니다. 더 높은 단계의 정신적인 성취를 바라는 사람들은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갑니다. 책을 쓰는 지식인들이 이 단계에 가장 많이 있습니다. 무수한 오류들은 집어삼키고, 시행착오와 방황, 고독한 자기 동력과 엄격한 지적인 수련을 거치면 갈 수 있는 단계이지요. 세 번째 단계에 오른 사람들은 희귀합니다. 어린애는 순진무구한 생의 명랑성,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정신의 발랄함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인용한, 니체가 말한 정신의 단계를 보니 나는 여태껏 낙타에 머물러 있었고 크게 벗어나기도 힘들겠구나하는 애매한 안타까움이 든다. 아마 이 책의 저자는 확실히 낙타의 수준은 훌쩍 넘어선 듯 하다.
저자는 젊은 시절 방황 이후 문필가로써의 자질과 역량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후 나이들어 시골 산골에서 적절한(?) 은둔을 하며 자급자족과 검소함을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싶은듯 하다.
저자가 인용한 프리초프 난센의 다음 글은 세속에 찌들어 지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삶의 풍요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많이 버는 것보다는 적게 쓰는 것이 더 낫다.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예가 되어야 하지만 적게 쓰고 지낼 수 있으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적게 쓰는 사람은 더 쉽게 자기 목적을 향해 매진할 수 있을 것이며, 필요한 게 많은 사람보다 대체로 더 풍요롭고 충실한 삶을 산다." - 프리초프 난센, 핸드메이드 라이프
책의 도입 '웃자'라는 단상 역시, 흔해빠진 것 같은 웃음이라는 의미를 새로이 하게 만든다.
웃음은 사랑과 사람 사이에 긴장으로 만들어진 뻑뻑함을 풀어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지요. 웃음은 완고한 사람을 유연하게, 편협한 사람을 원만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웃으면서 타자의 세계 속에 동화되고 공감과 연대감을 두텁게 하지요.... 사람들은 웃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중략.)
니체라는 철학자에 따르자면 웃음은 보다 높은 인간이 되려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요.
"웃고 있는 예언자 짜라투스트라, 높이뛰기와 멀리뛰기를 좋아하는 자, 나 자신이 이 왕관을 내 머리에 얹었노라! 웃는 자의 이 왕관, 장미꽃으로 엮은 이 왕관, 형제들이여 이 왕관을 그대들에게 던져주노라! 나는 웃음을 신성하다고 말하노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내게 배울지어다-웃음을."
공감가는 철없던(?) 그의 경험도...
한때 비극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지요. 철이 없던 시절이었지요. 행복보다는 불행에, 기쁨보다는 슬픔에, 유쾌함 보다는 우울함에 더 탐닉했지요. 웃음은 경박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과묵하고 표정은 늘 무겁고 진지했지요. 좀처럼 웃지 않았지요. 그게 멋있다고 여겼던 게 틀림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생각이 여물지 못하고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 있지요. 문학과 철학에 심취한 소년은 웃지 않기가 세상의 경박함에서 멀어지고 진지함에는 가까워지는 일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지요.
나는 문필가의 글 속에서 특히 책과 독서에 대한 그들이 생각을 듣고 싶어한다. 인문서적 탐독에 대한 동기와 용기를 불러다 줘서 인가 보다.
책읽기는 우선 남과 그가 일군 세계와의 만남이요 교감이지요. 제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책의 지은이와 만나는 것이지요. 만남은 대화와 소통으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동안 뜻밖에도 내면의 들뜸은 가라앉고 고독은 위로받습니다. 책을 읽으면 강박과 고독은 그 부피가 줄고 기쁨과 지혜는 커집니다. 그리하여 제 안에서 도축장인 듯 신음하고 울부짖는 가축들은 잠이 들고 제 안의 지옥들은 문을 닫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 밀려드는 벅찬 감동과 함께 세상의 무질서와 혼돈을 제압하고 이윽고 샘풀처럼 괴는 고요와 평화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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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문고전 독서의 추천도서로, 율곡 이이 선생께서 아이들의 교육과 인성을 위해 지은 책이라 한다.
약 500 년 전, 대학자 율곡 이이 선생께서 아이들은 포함해 범인들을 깨우쳐주고자 한음한음 정성들여 기록했을 것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글 하나하나가 값지며 새롭다.
책은 학문의 중요성과 학문을 하는 자세에 대하여 제일 먼저 언급한다.
학문에 이르기 어려운 점은 옛날의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함에 있다고 하여 8가지 구습을 알려주며 이러한 습관은 아주 끊어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학문은 이치를 살피기 위한 것이며 이치를 연구하는데는 책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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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보통 사서라고 하는데, 여기에 소학을 더하여 일컫는 말오경: 시경, 서경, 역경의 삼경에 예기, 춘추를 더하여 일컫는 말
마지막으로 처세에 관한 부분을 발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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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저 | 까만양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의 책이다.
저자의 여러 화려한 이력보다, 젊은 날 20개월 동안 절에 들어가서 고전,역사,문학서 등 300여 권을 독파 했다는 남다른 경험에 큰 관심이 간다. 대학 진학을 앞 두고 행한 일이라 하는데 어찌 보면 어린 나이라 할 수 있는 그 시기에 이런 결심을 하고 실천했다니, 역시 남다르다 하겠다.
이 책을 본 후,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책을 읽으며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에도 책을 읽다가 모호한 단어나 사자성어 같은 것이 나오면 가끔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항상 그러지는 못했다. 저자의 말처럼 '문맥의 흐름에 맞춰 대강 이런 뜻이겠구나' 하며 넘긴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라는 충고를 하며,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글을 읽을 때에는 명물이나 글 뜻이 어려운 본문은 그때 그때 적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라.
선배인 장학성과 나의 친척인 복초 이광석은 남을 만날 때 마다 물었다.
- 책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이덕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중략) ...
사전을 참조해 가며 읽는 독서는 더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유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독서의 속도에 가속이 붙어 점점 수월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덕무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금산사에서 읽었던 여러 책들의 내용이 생생하게 남아 내 삶의 자양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양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질적인 것을 추구하며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열권의 책을 서투르게 읽는 것보다 한권의 책을 정교하게 읽는 게 마음의 양식으로 남는다는 것은 절대 분변의 진리다.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독서일기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고 한다. 물론 독서일기도 자유형식으로 꾸준히 작성하며 글을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귀와 함께 자신의 감정과 고민, 느낌을 같이 메모해 두고 보관해 왔다고 한다. 저자가 아들에게 물려 주고 싶은 것도 바로 이렇게 작성된 수 많은 '독서일기'라 한다.
... (중략) ...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뭔가를 자주 기록해서 자신의 삶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글쓰기가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 (중략) ...옛날에 읽었떤 책에 대한 새로운 생각, 앞으로 읽고 싶은 책에 대한 기록,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 책과 얽힌 소소한 일화 등 독서일기의 소재는 생각해보면 실로 다양하다. 책에 대한 언급 없이 그날 있었던 내용들을 써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의 단상과 그것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에 대한 일상적인 성찰을 함께 써나가는 것이 독서일기라고 보면 된다.
책의 서문에서도 독서일기로 다져신 글쓰기의 위력을 언급하고 있다.
읽기와 쓰기는 따로 있지 않다며 일기 못지않은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금의 여러 현인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필사'의 의미와도 같은 것이리라.
... (중략) ...
읽고, 쓰고, 외우는 삼단계의 과정을 거치면 어떤 내용이든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되어 적재적소의 순간에 자유자재로 활용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은 저자의 표현대로 '4GO' 전략으로 매듭지어 진다.
- "베께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고, 외우고"
그리고 '책 속에 책이 있다'며 각주와 참고문헌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찾아 읽어보라는 충고가 와 닿았다. 지금껏 책에서 저자가 본문을 통해 직접 언급한 책을 제외하고는 각주나 참고 문헌으로부터 독서 목록을 구성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읽기의 독서를 넘어 책을 저술하라고 권고한다.
물론 가벼히 접근할 수 없다는 충고와 함께...
알량하게 몇 권 읽어 놓고 나도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쌀도 없이 밥을 짓겠다는 것처럼 맹랑하고 터무니없는 욕심에 불과하다.
책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도대체 무얼 쓰야 하는지 부터가 문제일 텐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의 시인 말라르메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책이 될 수 있다. 유명하고 똑똑한 사람만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고 나서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답 역시 단순 명료하다.
"읽고, 베끼고, 외우는"것을 충실히 하면 문장은 저절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독서메모, 독서일기의 저력은 자신의 문장이 완숙해진다는 점으로 표출된다.
...(중략)...
한 단락의 글을 쓰면 한 장의 글을 쓸 수 있고, 한 장의 글을 쓰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진정한 독서는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으로 완성된다. 저자가 되라!"
이후 저자의 젊은 시절부터 소장해온 책과 그 내용 및 느낀점을 간략히 소개하는데 제일 먼저 소개된 사마천의 <사기>는 나 역시 관심있게 여기던 책이라 반가웠으며 주말에 당장 도서관에서 빌려오게 되었다. 먼저 개론서부터 보고 이후 열전, 세가, 서, 본기, 표의 순으로 이어서 보고 싶다.
그리고 이어서 소개된, 법구경과 유성룡의 징비록에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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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바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랭클린 다이어리에 항상 빼 놓지 않고 삽입되는 금언으로 프랭클린이 한 대표적인 말이다. 그 자신이 철저히 지켜왔던 계획적인 삶의 근간이 되는 인생 철학인 셈이다.
이 책은 프랭클린 자신의 가족적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과,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 의해 성공 철학의 대중적 보급(?)을 목적으로 쓰여진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도입부에 다음과 같이 자서전을 쓰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조상의 일화를 수집하는 것을 즐겼다. 조상들의 이야기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버리지 않았다. (중략)
너도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궁금하리라 믿는다. 너는 나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마침 시골에서 일주일 동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네게 이 글을 쓰고 있다. (중략)
나는 가난하고 이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큰 행복을 누려서 그런 대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내 이름도 알렸다.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나를 성공으로 이끈 방법들을 내 후손들도 알고 싶어하리라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처지에 맞는 방법을 골라서 그대로 따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중반부에 대중을 위해 쓰게 된 계기를 언급한다.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라 그의 경험과 사상을 고스란히 직접 전해 듣는 듯 한 느낌이 좋았다.
그의 성공 습관 근간에는 근면과 성실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대에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한 12가지 덕목을 세우고(실제 13가지 덕목이지만 마지막 한 가지(겸손)는 12가지 덕목을 세운 이후에 추가된 것이다.) 이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주간 기록표를 만들고 매일매일 체크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청춘이라 하겠다. 이렇게 하는데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덕목 자체가 특별한 비법이진 않을테다. 그도 그럴것이 덕목 자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보편적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덕목과 원칙을 뚜렷히 세우고 자신의 삶에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성공의 비법인 것이다. 물론 이 것이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아무나 성공할 수 없으며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특별한 이유인 것이다.
또 다른 이의 지식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자신의 발전을 이루기를 바라면서도 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만 고집하면 안 된다. 신중하고 분별 있고 따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네 잘못을 알아채더라도 굳이 짚어 주지 않을 것이다. 포프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듯해야 하며, 그들이 모르는 것은 잊어버린 것으로 취급해 주어야 한다." - 포프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인 원칙들을 아예 다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한다는 것,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섭리로 주관하고 있다는 것, 신이 가장 기뻐하는 봉사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라는 것, 우리의 영혼은 불멸하며 모든 악은 단죄받고야 만다는 것, 덕행은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꼭 보답을 받는다는 것 등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유명한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을 세우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중략)
우선 그때까지 읽은 책에서 보았던 수많은 덕목들을 열거해 보았다. (중략)
나는 명확함을 기하기 위해 더 적은 덕목에 규율을 길게 붙이는 것보다는 덕목을 조금 더 늘어놓고 각각의 덕목에 수반되는 규율을 자세히 붙이기로 했다.
이어서 13가지 덕목을 조목조목 기술한다.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
2. 침묵
자신이나 남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 쓸데없는 말은 피하라.
3. 질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라. 모든 일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라.
4. 결단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라. 결심한 것은 꼭 이행하라.
5. 절약
자신과 다은 이들에게 유익한 일 외에는 돈을 쓰지 말라
6. 근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언제나 유용한 일을 하라. 안 해도 될 행동은 끊어 버려라
7. 진실
남을 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라. 순수하고 정당하게 생각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하라.
8. 정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응당 돌아갈 이익을 주지 않거나 하지 말라.
9. 중용
극단을 피하라. 상대방이 나쁘다고 생각되더라도 홧김에 상철르 주는 일을 삼가라.
10. 청결
몸과 의복, 습관 상의 모든 것을 불결하게 하지 말라.
11. 평정
사소한 일, 일상적인 일이나 불가피한 일에 흔들리지 말라.
12. 순결
건강이나 자손 때문이 아니라면 성 관계를 피하라. 감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약해지거나, 자신과 다른 이의 평화와 평판에 해가될 정도까지 하지 말라.
13.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그리고 이 13가지 덕목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이 확인했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절제' 덕으로 나는 일생을 건강하게 살았고 지금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근면'과 '절약' 덕으로 젊은 시절의 어려운 환경을 쉽게 이겨 냈고 재산도 모았다. 거기에 많은 지식까지 겸비여 쓸모 있는 시민이 되었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 괜찮은 평판도 얻었다. '진실'과 '정의' 덕으로 나라의 신뢰를 얻어 명예로운 직책을 맡았다. 또 원하는 만큼 완전히 습득하지는 못했어도 이 많은 덕목들의 일치된 힘으로 항상 침착할 수 있었고 기분 좋은 대화를 할 줄 알았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고 젊은이들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내 후손 중에 몇 명이라도 이를 본받아 그 덕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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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 저/김고명 역/전옥표 감수
전형적인 동기부여, 자기계발서이다. 근래 자기계발서를 지속적으로 읽는 이유는 동기부여의 지속성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형적이라는 표현에 스며있는 어찌보면 뻔한 스토리의 내용일지라도 동기부여의 지속성에 기여한다면 큰 가치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강조하는 15가지 지침을 직접 실천한 역시 전형적인(?) 인물이다. 물론 저자역시 15가지 지침을 미리 정해두고 이를 실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천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립시킨 결과 일테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도적 성장의 출발을 예기하고 있다.
"40년 전 성장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몰랐다. 그저 나에게 성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의도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이다"
의도성이라는 표현이 다소 작위적이고 비순수성을 지닌 느낌을 주지만 이것은 계획적인 삶을 칭하는 표현으로 무턱된 자기계발이 아닌 묙표와 성장에 초점이 올바른 방향으로 정해진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즉, 효과적인 성장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의 실천을 말하는 것이다.
책은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된다.
인생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중략)...
인생이라는 경기에 성실히 임했다는 자부심이다.
그래.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었느냐 이전에 어떻게 살았냐는 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돈과 명예와 같은 객곽적인 지표를 달성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삶에 충실했는지에 대한 답을 떳떳히 할 수 있어야 하는 않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하루 5분, 그날의 일과를 되돌아보라.
하루 10분,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라.
하루 15분, 마음속의 꿈을 재확인하라.
인생에서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 자신의 속도로 가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계속 가라.
이 책에서 제시하는 15가지 지침을 사전 그대로 공식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저자는 뭔가 이론적 배경이 필요했기에 15가지 지침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론화 했지만 중요한 것은 느낌과 실천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15가지 지침이라는 이론적 전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나하나의 지침에 깔려 있는 저자의 경험과 동기부여, 실천으로 이어지는 강한 자극만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성공보다는 개인적인 성장에 삶의 초점을 맞추라 한다. 뭔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성공을 위한 목표 설정,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과 성취의 달콤함과 같은 일반론을 뛰어넘는 근원적인 동기의 자극이다. 지금까지 성공에 대한 욕심보다 성장이라는 근원적인 삶의 충실함은 간과하지 않았나 한다.
"나는 목표가 아니라 성장을 의식하려 노력했다."
매일매일의 작은 실천, 꼭 지켜야하는 작은 원칙들이 결국 성장과 성공의 열쇠라는 조언이 참으로 와닿는다.
그리고 의도적인 되돌아보기를 강조한다. 마치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틀린 문제를 되돌아 보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오답노트의 중요성은 학생들의 시험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은 다짜고짜 시험부터 치르게 한 뒤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어려운 스승이라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단, 시간을 내서 경험을 되돌아보는 사람에게만 그렇다. 되돌아보지 않으면 시험만 치르고 가르침은 영영 못 받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날마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데, 이는 잠깐 멈춰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멈추는 여유는 그만큼 중요하다.
"하루를 마칠 때 자신이 한 일을 되새겨보라. 그러면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자극하게 될 것이다" - 짐 론
성장을 위한 환경의 중요성도 말하고 있다.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는 환경보다 자극 받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 자신이 직접 그런 환경을 찾아 다닌 것 처럼.
이런 환경에는, 인간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부지깽이를 뜨겁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내가 조용히 웃자 그는 "불가에 두면 된다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도 부지깽이의 쇠와 같다고 덧붙였다. 환경이 차가우면 우리도 차가워지고, 환경이 뜨거우면 우리도 뜨거워진다는 예기였다.
"성장하고 싶으면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훌륭한 곳에 가고, 훌륭한 행사에 참석하고, 훌륭한 책을 읽고, 훌륭한 강연을 듣게."
그리고 의도성을 가진 계획, 체계적이고 일관된 끈기 있는 삶의 중요성을 말한다.
"어디로 가니?"
소년은 드리블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오빌로 갑니다."
"오빌은 여기서 1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네, 알아요."
"거기 가서 뭐 하려고?"
"왼손으로 드리블해서 집으로 돌아오려고요."
노신사는 에릭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아이가 자네 부친이었네."
성장을 위한 진지한 노력에는 좋은 성품 기르기도 포함된다.
"벗이여, 누구도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마무리를 할 수는 있다네." - 카를 바르트
밤에 세 시간씩 <<댄싱 위드 더 스타>>와 <<NCIS>>를 보면 당연히 좋은 책을 읽거나 훌륭한 음악을 들을 시간이 세 시간씩 줄어든다. 좋은 운동화를 산다고 당장 마라톤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종이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왜 몹쓸 습관에 비합리적으로 종속되어 있는가? 즉각적인 만족을 바라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면 생각 없이 그저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동물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청구서를 받은 설비 담당자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수리비가 무려 1,000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전문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상세한 명세서를 보내주지 않으면 절대로 지급할 수 없습니다."
곧바로 다음과 같은 청구서가 도착했다.
망치질 - 1달러
망치질이 필요한 지점을 파악한 것 - 999달러
일본에서 '센세이'는 길을 앞서 간 사람이다. 무술에서는 사부를 지칭한다.
산스크리트어권에서 '구루'는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갖춘 사람이다. '구'는 어둠, '루'는 빛을 뜻하므로 구루는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티베트에서 '라마'는 영성이 깊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는 최고의 스승이다.
이탈리아에서 '마에스트로'는 음악의 대스승이다. 이는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의 약어로 본뜻은 성가대 지위자다.
프랑스에서 '튀퇴흐'는 개인교사다. 이 말의 어원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본래는 후견인을 가리켰다.
영국에서 '가이드'는 길을 알고 알려주는 사람이다. 더 나은 길을 보고 가르쳐주는 능력을 암시한다.
그리스에서 '멘토르'는 현명하고 믿음직한 조언자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멘토르는 상대를 보호하고 지지해주는 조언자를 의미한다.
스스로에게 강한 자극을 주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전옥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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