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8. 3. 14. 16:47


실로 오랜만에 소설책을 완독했다.

1998년도 3개월간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을 꽤나 읽었었다. 그 이후로는 아주 간혹 소설책을 건드려 보긴 했으나 매번 완독하지는 못했다.

주로 전공과 관련된 책이나 자기계발서, 인문학 서적, 역사와 관련된 책을 위주로 읽어 왔었다.

우연히 큰 애가 다 읽고 책장에 꽂아준 것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확실히 소설책 답게 흥미롭고 술술 읽혀지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삼분의 일 정도 읽다가, 늘상 하던데로 어딘가 던져 놓았다가...

어디선가에서 본 소설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설책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해야 한다"

공감하며, 다시 꺼내어 다 읽게 되었다.

인문학 책은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소설책 특유의 평이한 문체에 내용까지 흥미로우니 한번 읽기 시작하면 좀체 멈추지 않는다.

간만에 소설책을 완독하고 흥미를 가지게 되어 기쁘다.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을 시작해야 겠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0) 2018.03.14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0) 2014.08.12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2014.06.23
불안  (0) 2014.03.3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0) 2014.02.25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submit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8. 12. 12:17

 

 한정주 저 | 예담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을 기반으로 사람의 올바른 길을 안내하고 충고하는 책이다.

타고난 천재이면서도 평생의 깊은 공부와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한 율곡.

 

현 시대의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이러한 옛 성현의 위대한 삶의 발 끝이라도 따라 가겠는지 원....

그의 사상과 철학, 학문과 개혁정신, 절제를 흠모할 뿐이다.

----------------------------------------------------------------------------------------

 

예나 지금이나 세치 혀의 가벼움은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튼 칼'

 

"말을 신중하게 하라. 배우는 사람이 선비의 행실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사람의 잘못은 말에서 말미암은 것이 많으므로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정성스럽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율곡전서

 

현명한 사람의 입은 마음속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입 안에 있다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한 내용에서 '살아서도 유익함을 주지 못하고 죽어서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라는 인상적인 구절이 매우 와닿는다.

 

"대우(중국 하나라의 시조 우임금)는 성인이지만 촌각 같은 짧은 시간도 몹시 아끼셨다. 그러니 우리 보통 사람들은 촌각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한 푼만 한 시간이라도 아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한시를 편안히 놀고 술에나 취해서, 살아서도 이 세상에 유익함을 주지 못하고 죽어서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단 말인가. 이는 스스로 자기 몸을 버리는 것과 같다." - 도간(진나라 무장)

 

독서는 지은이의 정신세계와 그의 시대와 사상으로 들어가는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독서를 하는 중에는 어떠한 현실의 고뇌와 문제라도 모두 잊어버린다는 독서광들이야 말로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독서는 여행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렇듯 옛 성현의 자취와 행적이 담긴 책을 살피지 않고 홀로 사물의 진리와 세상사의 이치를 밝히겠다는 것은, 방 안에 쌓아둔 보물은 내팽개쳐 둔 채 온갖 고생을 하며 밖에서 보물을 찾아 헤매는 꼴이나 다름없다.

 

"하루에 두 시간만이라도 다른 세계에 살아서 그날그날의 번뇌를 끊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육체적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만한 특권을 얻는 것이다." - 사마천

 

독서의 가치는 단순히 읽는 것에 있지 않다. 읽고 고찰하고 실천할 방도를 찾을때에야 만이 독서의 유용함이 현실화 되는 것이라는... 정말이지 스스로 반성할 대목이다.

 

'중용'에 보면 독서를 하는 5가지 방법이 나온다. '박학/심문/신사/명변/독행'이 그것이다.

'박학'은 두루 혹은 널리 배운다는 의미이고, '심문'은 자세히 묻는다는 것이다. 또한 '신사'는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명변'은 명확하게 분별한다는 것을, 그리고 '독행'은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만히 앉아 글자만 읽거나 그 안에 담긴 지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여 실천하는 것 모두가 독서에 해당한다.

 

율곡의 개혁의지에 별 반응이 없던 선조에게 많은 실망과 허망함을 느꼇을 것이다. 그이 이런 마음을 잘 대변하는 구절이라 하겠다.

 

"임금이 공경과 예를 다하지 않으면 도덕을 갖춘 선비를 만날 수 없고, 간하는 말을 듣고 따르지 않으면 신하로 삼을 수 없으니 임금은 마땅히 정성을 미루어 임무를 맡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략) 후세의 임금은 현자를 좋아할 줄을 알지만 좋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직위와 녹봉으로 붙들어두기는 해도 현자의 말을 쓰지 않아 그의 진퇴를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고, 명분만 좋아하고 실제는 추구하지 않아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맡겨서 일을 그리치고 지조를 잃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자가 그 총명함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그가 가진 재능을 적합한 곳에 사용하며, 그를 믿어 성실하게 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참으로 현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학집요, 위정 상

 

가정사에서도 서로가 화목하게 지내기 위한 규율을 일일히 규정하고 실천하였다고 하니...

 

"기뻐할 일이나 싫어하는 일이 있더라도 치우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항상 부드러운 얼굴과 온순한 말로 대해야 한다. 타이르거나 꾸짖을 일이 있을 때에는 절대로 성내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밖에서는 결코 헐뜯거나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참소하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혹시 이간질하는 자가 있으면 노복은 매를 때려서 경계하도록 하고, 첩은 엄하게 주의를 준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즉시 내보낼 것이다." - 동거계사

 

마지막으로 현 시 사람들에게 더욱 귀감이 될 만한 문구 하나 발췌하고 마무리하자.

스스로 고상한 것이나 전문적인 것을 취한다고는 하지만 그 근본은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과 문어발식 관계의 허영심이라면 진정하다 할 수 없으며,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므로 근본의 일치는 억지로 붙들여 매려 하지 않아도 서로가 묶이게 되는 것이다.

 

"소리가 같은 사람끼리는 서로 호응하는 법이고 기운이 같은 사람끼리는 서로 찾게 마련이다. 만약 내가 학문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문하는 선비도 역시 나를 찾을 것이다. 겉으로는 학문을 한다고 하면서도 문 앞에는 잡된 손님들이 많이 출입하고 떠들썩하게 세월을 보내는 사람은 실제로 그가 즐기는 것이 학문에 있지 않은 때문이다" - 격몽요결, 접인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0) 2018.03.14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0) 2014.08.12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2014.06.23
불안  (0) 2014.03.3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0) 2014.02.25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submit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6. 23. 10:45

 

구본형 저

 

온라인 서점의 추천 책 링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된 저자의 몇 가지 저술들과 추쳔평 들...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지만 그의 저술을 접해본 적은 없었던 듯 하다. 검색을 좀 더 해보니 저자는 작년에 작고하신 것으로 나온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들며 그의 책과 그의 글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50살의 문턱앞에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회고한 자서전 같은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은 아직 접하진 못했으나 그의 가장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았나 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10년에 한번씩 이런 형태의 개인의 역사를 출간하려고 싶다고 했으나 60의 문턱앞에서 세상과 이별했으니 그의 또 다른 10년을 듣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자서전은 나이 먹어 쓴느 회고록이고, 통상 죽기 전에 한 번 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10년에 한 권씩 나의 이야기를 편찬하려 한다. 조금 일찍 깨달았다면 더 빨리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40대의 10년부터 시작하게 된 것은 공교로운 일이었다. 만일 20대나 30대부터 기록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10년후의 세계를 예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개인이 역사는 그 스스로가 기록하고 편찬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가 남겨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개인의 역사를 스스로 재 조명해봄으로으로써 미래를 올바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갸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중략)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중략)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기질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적잖이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의 기질의 많은 부분에 나의 기질을 엿볼 수 있어 그러할 것이다. 사소하게는 의자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부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는다. 약간 흔들리게만들어 놓고 편안하게 반쯤 눕듯이 앉는다. 내 의자는 꽤 좋다. 그리고 편하다. 나는 하루의 여러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의자에 약간의 돈을 투자하였다.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무척 부끄럽워했다. 나는 사람의 관계는 가능하면 순수한 것이 좋다고 신봉하는 축에 속하는 숙맥이다. 나는 이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의미와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능란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세계를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데 까다롭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특히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은 저술가, 대학교수, 예술인, 카운슬링 또는 컨설팅 등이다. 

 

 

그의 20대와 30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잘 나가는 외국계기업에서 20년을 근무한 저자는 자신의 직장 경험을 살려 변화경영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40대를 보냈다. 책의 제목과 같이 마흔세 살에 불현듯 스쳐간 생각을 시작으로 저술을 하기 시작하고 1인 기업인, 강연자, 저술가가 되었다고 한다.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파도를 높이 탔다. 나는 늘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었다. 16년 동안 변화경영 분야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얻어낸 지식과 경험과 관찰을 분류하고 정리하며 해석해보고 싶었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언젠가 책을 한 권 내는 것은 오래된 욕망이었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1997년, 마흔세 살이 되는 여름 어느 날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 달 동안 포토 단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새벽에 깨어 일어나 앉았다. 아마 배가 고파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같다. 잠이 깼지만 그대로 눠워 있었다. 날은 천천히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할 일 없이 하루를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누워 있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없었다. 하루는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었다.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즉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1994년 1월 첫날이 어떻게 밝았는지 이제는 기억할 수 없다. 그해는 내가 마흔 살이 되던 해였따. 아마 비장한 각오, 마흔이 된 체증, 알 수 없는 숫자의 압력에 눌려 침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변화는 마흔 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용혼을 덮쳐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많은 현인들이 남긴 글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저자의 의견도 일치한다.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따.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며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자신만의 하루의 일부를 소개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팁도 알려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다를 것들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잇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직장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대목에서는, 현실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정당화의 방패로 삼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스핀오프(spin off)의 대상이 되는 부서의 관리자 몇 사람을 만나 개인적인 의견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반대했다. 월급은 상대적으로 적고, 일은 많으며, 단순하고 반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비전도 기회도 적은 그 부서 사람들은 모두 다 IBM 속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들의 애환을 잘 아는 나는 왜 밖에서 작지만 독립적인 회사의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일 년에 한 번쯤 흔들의자에 앉아 마치 다 산 것처럼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글을 갈 것이니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잠을 자다가 학교에 가야 하나 보다 하고 소스라쳐 깨어났는데 아직 식구들이 다 잠들기도 전인 한밤중임을 알았을 때, 그리하여 달콤한 잠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간 것 같았는데 많은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의 아늑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 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나도 늦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나 만나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우연히 글 쓰고 강연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1인 기업가가 되었을 때, 나는 하늘을 나는 새였다.

 

그러나 내가 떠나온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확보하는 순간 과거 생활을 장점들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아무런 소속감이 없었다. 안전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어졌다. 매일 지겹도록 만나면서 미운 정 고운정이 든 동료들도 사라졌다. 내게 정규적으로 '먹이를 주던 손'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면 가야할 곳도 사라졌다. 생명보험도, 자녀교육비 지원도, 의료보험도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지출되었다.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었던가!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저자는 죽음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죽음 앞에 허망한 꿈같은 과거를 미리 되새기는 정신적 여행을 하여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으라 강조한다. 그가 이미 작고하여 이 충고는 더욱 값진 소리로 다가온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0) 2018.03.14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0) 2014.08.12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2014.06.23
불안  (0) 2014.03.3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0) 2014.02.25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1. 나그네

    이 글을 읽고 바로 책을 주문 했습니다. 이런 고민은 모든 직장인들의 공통적인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submit

불안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3. 30. 15:49

 

알랭 드 보통 저/정영목 역

 

도서관에서, 딱히 정한 책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이다.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저자의 이름과, 심플하지만 왠지 심오할 듯한 책 제목에 끌려 그 자리에서 잠시 도입부를 읽어 내려갔다.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적잖이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내용과 저자가 풀어놓은 독특하고 개성있는 문장과 구성에 감탄하여 빌려오게 되었다.

 

책은,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안을 주제로 다룬다.

세속적인 삶에서의 지위를 갈망하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그 갈망의 양만큼 더 커질수 밖에 없는 불안의 측면을 예기한다. 불안이 생기는 근원적인 원인을 통찰력있는 글과 인용으로 풀어나가고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인간 삶의 궁극적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하는 철학, 예술, 종교적 사례와 접근법을 소개한다.

 

책은 먼저 지위를 정의하면서 출발한다.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지위(status)는 신분이라는 듯의 라틴어 statum에서 파생되었다.

- 협의의 의미, 그러나 사전적 의미: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

- 광의의 의미, 그러나 실제적 의미: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농담이 썰렁할 때도),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높은 지위를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놓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런 지위를 갈망하면서 생기는 불안을 안내(?)한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이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도입의 마지막으로 책을 쓴 동기를 설명한다.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안정적이고 높은 지위와 부를 바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며 때론 성공의 축배도 들지만 (그 보다는 더 자주) 실패의 쓴맛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삶속에서 인간은 항상 불안을 느끼게 되며 삶의 궁극적 가치를 망각하여 인생 전반을 자신도 모르게 암울하게 살다 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뭔가 거창한 해법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구문에서 저자의 집필 동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입을 지나, 불안의 원인을 5가치 측면에서 설명한다.

1. 사랑결핍, 2. 속물근성, 3. 기대, 4. 능력주의, 5. 불확실성

 

사랑결핍이라??

불안의 요인으로 제시한 5가지 중, 목차만으로는 쉬이 이해하기 힘든 제목이었다.

높은 지위 즉 돈, 명성, 영향력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중에서도 사회적 사랑을 말한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가족에게 나타나든, 성적 관계에서 나타나든, 세상에서 나타나든 일종의 존중이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볼 수도 있겠다. (중략)

지위와 관련된 사랑을 받는 사람 역시 낭만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눈길을 받으며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중략)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듣고, 미묘한 개성은 짓밟히고, 정체성은 무시당한다. 낮은 지위가 끼치는 영향은 물질적인 맥락에서만 볼 수 없다. 낮은 지위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들을 낳기 때문이다.

 

낮은 지위로 인한 물질적 불편함보다 정신적 고통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불편은 모욕을 동반하지만 않으면 오랜 기간이라도 불평 없이 견딜 수 있다. 병사나 탐험가들이 그런 예다. 그들은 사회의 극빈층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궁핍을 기꺼이 견디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녀낸다.

마찬가지로 높은 지위가 주는 유익은 물질적 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부자들 가운데는 다섯 세대가 써도 남을 만큼 돈을 축적해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모으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부의 창조를 경제적인 이유만 가지고 설명하려 할 때에만 그들의 노력이 이상해 보일 뿐이다. 그들은 돈만큼이나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존경을 추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글을 인용한다.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탐욕과 야망을 품고,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생활필수품을 얻으려는 것인가? 그것이라면 노동자의 최저 임금으로도 얻을 수 있다. (중략)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을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렇게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중략)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바보라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도 댈 수 있고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는 증거도 댈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치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진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중략)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물질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지 결정한다.

 

그리고 두 번째 원인인 속물근성.

속물근성은 아주 적은 예외를 제외한다면 누구에게나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는 속물근성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살고 있는 듯 하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뀌기 때문이다.

 

속물 집단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죄절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는 즉, 우리의 지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멍청한 아첨꾼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권력이나 명성 때문에 당신을 사귄다고 말하지 않는다. (중략) 유능한 아첨꾼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상대의 지위와는 전혀 관계없는 부분임을 암시해야 함을 안다. 그래서 으리으리한 차, 신문에 등장한 모습, 회사의 임원직위는 자신의 깊고 순수한 애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소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첨꾼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그의 반지르르한 표면 밑에서 변덕스러움을 감지하고 속물의 무리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속물근성이 자연스레 인간의 본성처럼 굳어져 가는 것은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과 같은것 일수도 있다. 주변에 늘 마주하는 사회적 상황이 속물근성을 부추긴다는 새커리의 신문에 대한 비판이 무엇보다 와 닿는다. TV프로에 연예인들의 아주 사소한 신변잡기가 뉴스나 화제거리로 매체에 소개될 때 난 새키리와 비슷한 느낌을 늘 받아왔다.

새커리는 영국인이 높은 지위와 귀족계급에 매달리는 원인이 궁극적으로는 신문에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매일 작위가 있는 사람과 유명한 사람이 존엄한 존재라고 역설하는데, 이는 결국 작위가 없는 보통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역설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중략)

<모닝 포스트>의 궁정란을 보면, 브로엄 경이 브로엄 홀에서 사냥 파티를 열었다는 기사("모두 많이 잡았다"), 애그너스 더프 여사가 에든버러에서 출산할 날이 다가왔고, 조지너 폐이큰햄이 버글리 경과 결혼했다는 기사("신부는 레이스 주름 장식과 코르사주 몽탕을 갖춘 우아한 하얀 새틴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가 어여뻐 보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등이 눈에 띈다.

 

"이런 같잖은 기사들이 눈엎에 놓여 있으니 어떻게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커리는 말한다. "속물근성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신문을 타도하라!"

 

얼마전 모 출판사 대표님과 대화 중,  대략 중학교 정도 되는 나이 또래에서 연예인을 지망생이 엄청나다는 예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주변엔 그 나이 또래가 거의 없어 직접적으로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그 분 주위엔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라 하니, 이 역시 대중 매체가 부추겨 놓은 비뚤어지고 편합한 선망, 사회적 현상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등장과 사회의 급속한 발전, 그에 따른 기대 특히 상대적 기준에 따른 만족감의 차이를 설명한다. 언젠가 직장인들의 연봉 만족도는 절대적인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동료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는 것에 좌우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어떤 것 - 예를 들어 부나 존중 - 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우리가 가진 것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도 없고, 중세 조상의 생활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도 없다.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가 놀라운 번영을 이룩했다고 강조하는 소리를 들어봤자 전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평등해진 사회가 가져다 주는 기대와 그에 따른 패배감을 소개한다.

17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정치적 사고가 평등주의적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1651)에서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1835)의 '왜 미국인은 번영 속에서도그렇게 불안을 느끼는가'라는 제목의 장에서 불만과 높은 기대, 선망과 평등의 관계를 끈질기게 분석한다.

"출생과 운에 따른 모든 특권을 폐지했을 때, 모든 사람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누릴 때, 야망이 큰 사람은 위대한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 금세 교정되고 마는 망상이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자존심은 이룬 것을 목표한 것으로 나눈 것이라는 제임스의 방정식을 소개하며 이 방정식에 의하면 행복해 지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즉 목표한 것을 이루도록 더 노력하는 방법과 목표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정식을 제시한 제임스는 두 번재 방법의 장점을 지적한다고 한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이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신해지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우린느 말한다. '다행이야!. 그런 환상들은 이제 사라졌어. '자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부담이기도 하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이러한 가능성의 시대에 등장한 능력주의! 능력주의가 가져다 주는 불안의 측면을 예기한다.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부가 혈연과 연줄을 따라 세대에서 세대로 내려가던 때에는 돈이 부자 부모에게 태어났다는 것 외에 어떠한 미덕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지능과 능력만을 기초로 위엄 있고 보수 많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이제 부가 품성의 온당한 지표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부자는 단지 더 부유할 뿐 아니라, 더 낫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략)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위는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불안에 대한 요인의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을 언급한다.

자신의 변덕스러운 재능, 운,  고용주와의 관계와 그의 이익, 세계 경제 등 다양한 요소들을 소개하며 이러한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감을 설명한다.

사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승진이나 그 반대로 가는 길은 일의 결과와 필연적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조직의 피라미디를 성공적으로 기어 올라가는 등반가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고라기보다는, 문명화된 삶에서는 지침을 얻기 힘든 여러 가지 음침한 정치적 기술에 가장 숙달된 사람들이다.

 

책은 전체적인 글의 흐름을 살짝 방해할 정도로 세부 주제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데, 이 단락에서도 '음침한 정치적 기술'이라는 것, 15~17세기에 궁정사회의 명민한 귀족들의 정치적 처세의 언급을 소개한다.

 

"사람은 거짓되고, 음험하고, 기만적이고, 교활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탐욕스럽고 남의 이익에는 둔감하므로, 적게 믿고 그보다 더 적게 신뢰한다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구이차르디니)

 

"세상은 장점 자체보다는 장점의 표시에 보답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라로슈푸코)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안 한다. 그저 당신의 주군과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 (라브뤼예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사랑은 감사의 유대에 의해 유지되지만, 사람은 지나치게 이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이 유대를 끊어버린다. 그러나 공포는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되며 이것은 늘 효과적이다." (마키아벨리)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어떤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변함없이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잇다. 따라서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된 책은 앞서 불안의 5가지 원인을 한 장에 걸쳐 설명하고 두 번째 장이자 마지막 장에서는 불안의 해법을 소개한다. 역시 5가지로 구분하면서..

1. 철학, 2. 예술, 3. 정치, 4. 기독교, 5.보헤미안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어떻게 보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인간이라면 본성에 가깝게 자리잡은 사회적 인정과 부, 명예와 영향력과 같은 포괄적 지위에 대한 갈망에 파생될 수 밖에 없는 불안을 단방에 해소시킬 은탄환이 존재할리 없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더욱 해서는 안될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보다 근원적이다.

 

철학!. 이 얼마나 어린 시절 관심없던 주제였던가. 사실 사회적 성장을 목표하여 나름의 노력을 해 오던 나에게도 가장 직접적인 안식처(?) 된 것이 바로 철학이다. 물론 지금도 완전하지 못한 인성과 사회적 선망을 위애 어찌보면 헛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철학책과 옛 성인들의 격언과 그들의 생활을 듣고/보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황폐한 정신을 가졌을 것이다. 그나마 읽고 음미했던 철학적 메시지들이 중용을 미를 지키려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하게 된 계기라 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초 그리스 반도에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지위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는 턱수염을 기른 사람이 많았다. 이 철학자들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낮은 지위로 인한 심리적, 물질적 결과에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모욕이나 비난이나 빈곤 앞에서도 늘 차분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에 금과 보석을 잔뜩 매단 행렬이 지나가자 이렇게 소리쳤다. "봐라,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렉산드로스 대제는 코린트를 지나가다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디오게네스는 누더기를 입고 나무 밑에 앉아 있었으며, 무일푼의 신세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손에 쥔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해줄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있소." 철학자는 대답했다. "옆으로 좀 비켜주시오. 해를 가리고 있잖소." 알렉산드로스의 병사들은 경악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성질이 급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웃음을 떠드리며, 만일 자신이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분명히 디오게네스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티스테네스는 아테네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찬양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런, 내가 뭘 잘못했지?"  엠페도클레스도 다른 사람들의 지성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환한 대낮에 등을 켜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을 찾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장터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본 행인이 물었다. "그렇게 욕을 듣고도 괜찮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안 괜찮으면?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내가 화를 내야 옳겠소?"

 

철학은 공상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이성적이라 할 수 있다. 시대적 상황, 사회적 상황, 상대적인 상황 등에 따른 변덕스러운 가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가치를 이성이라는 도구로 걸러내도록 하여 내면의 평화와 자존감을 올려 준다.

철학적인 접근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의정신에 존경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염세적 태도의 전형적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다음의 말은 이러한 맥락의 좋은 본보기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려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철학 다음 해법으로 예술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위대한 예술을 특히 고전 예술을 접해보거나 관심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예술은 철학 못지 않게 삶의 본연을 들여다 보게 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위대한 영화도 현세에서는 위대한 예술작품에 버금가는 매체일텐데 영화에서 배우는 많은 삶의 본질을 떠올려보면 과연 예술이 정신 건강에 주는 긍정적 효과를 알 수 있다.

아널드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다. "<데일리 텔리그라파>의 젊은 사자들"에게 예술이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는 (직접적이든 아니든) "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중략)

그들이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현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샤르댕이나 존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쾨브케의 예술에도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배적인 물질적 관념에 도전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세 화가는 여름날 저녁의 하늘, 햇볕에 달구어진 얽은 벽, 환자를 위해 달걀 껍질을 까는 미지의 여자가 우리 눈이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존중하고 갈망하도록 배워온 많은 것의 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중략)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비극과 희극 역시 불안을 경감시키는 예술의 측면으로 소개하는데 먼저 비극을 보게됨으로서 느끼는 주인공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반성이 자만심을 버리도록 돕고 출세지향적 사고의 틀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주인공에 대한 동정심, 주인공과 동일시를 했기 때문에 생기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비극을 감상한 뒤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적 결과다. 비극 작품은 재앙을 피하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재앙을 만난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따라서 극장을 나설 때면 쓰러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우월한 태도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비극 작품은 아주 작은 단계들, 종종 아무 뜻도 없어 보이는 단계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주인공의 성공을 몰락과 연결시켜 나간다. 우리는 의도와 결과 사이의 비틀린 관계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문에서 단순히 실패의 이야기의 뼈대만 읽었을 경우라면 가지게 되었을 무관심한 태도, 또는 적의에 찬 태도를 버리게 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얻게 만드는 수단은 늘 변화해 왔다. 불안의 해소로 소개한 것들중 '정치'가 있는데 좀 생뚱맞다. 그러나 저자가 선정한 정치라는 개념은 다음 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높은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지위에 대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간다. 어떤 집단에서는 짐승의 옆구리에 창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전투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자본 시장에서 이윤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자신이 사는 사회의 이상 때문에 불안이나 실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충 살펴본 지위의 역사에서도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간파할 것이다. 그런 이상이 돌로 만들어져 굳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글을 통해 변덕스러운 정치적 가치에 한계를 인식하고 궁극의 가치 실현에 관심을 가진다면 적잖이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볼수 있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기독교'를 든다. 좀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보면 '종교'가 될 수도 있겠다.

톨스토이는 죽임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을 살핀 기록인 <참회록>(1882)에서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로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얻은 뒤인 쉰한 살 때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치나 신의 가치를 따라 산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를 따라 살았으며,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지고,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불안한 욕망을 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속한 사교계에서는 "야망, 권력에 대한 집착, 선망, 호색, 오만, 분노, 복수를 존중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자 이전의 야망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심이 생겼다. "'그래, 사마라에 땅 6,000데샤티나, 말 300마리가 있다 치자.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 그래, 고골이나 푸슈킨이나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보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보다 더 유명해진다고 치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의 의문을 가라앉힌 답은 신이었고, 톨스토이는 여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살게 된다. (중략) 이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더 진정한, 더 의미 있는 길의 안내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폐허는 세속적 권력이라는 불안정한 보답을 얻으려고 마음의 평화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한다. 낡은 돌들을 보다 보면 성취에 대한, 도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 누그러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략)

이런 소멸의 전망에 위로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불안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기획과 관심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과 그들의 사상/가치를 소개하며 세속적 가치를 다르게 해석하는 또 다른 집단의 사고체계에서 보편적 진리처럼 과대포장되어온 사회적 지위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고 힌트를 주는 듯 하다.

"부르주아지를 증오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그렇게 썼다. 이것은 19세기 중반 프랑스 작가들의 일반적인 발언으로, 그에게는 이런 경멸이 여배우와 연애를 하고 동양을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직업을 보여주는 표지였다. 플로베르는 부르주아지가 극단적으로 점잖은 척 행동을 하고, 물질주의적이며, 냉소적인 동시에 감상적이고, 하찮은 것에 몰두한다고 비난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멜론은 야채냐 과일이냐, 그것을 첫 번째 코스로 먹어야 하느냐(프랑스식) 아니면 후식으로 먹어야 하느냐(영국식) 같은 문제를 놓고 끝도 없이 논쟁을 한다는 것이다. 역시 이 계급을 좋아하지 않았던 스탕달은 이렇게 주장했다. "진짜 부르주아들의 인간과 삶에 대한 대화는 추하고 잡다한 말들이 집합체에 불과하며, 한동안 어쩔 수 없이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보헤미안의 가치 체계에서 순교자적 인물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또는 여행이나 친구와 가족에게 헌신하기 위해 안정된 정규 직장과 사회의 존경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헌신 때문에 외적인 품위의 표시는 부족할지 몰라도, 보헤미안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들의 윤리적 양식과 감수성과 표현 능력 때문이었다.

 

집단과 그 전통은 열등하다는 보헤미아의 믿음과 더불어 개인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으며, 이와 더불어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났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살고, 옷을 입고,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 이제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말자... 이 시대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을 모욕하고 질책하자."

 

서서히 저저의 결론에 도달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 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저자 역시 인정하며 다만 선택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그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창피를 당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집단의 판단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악,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각 항목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중략)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개구리에게 우물안 세상만이 전부인 것 처럼...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현재 자신이 속한 집단과 그 집단이 해야 할 일에 파묻혀 있다 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그 속에 견고히 자리잡고 있는 편협한 사회적 가치에 갈망하고 괴로워하는 우리 자신을 드물게 목격하게 된다.

 

정신이 그나마 조금 풀린 주말 산책 길에서 혹은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논하는 책을 볼때, 교양의 테투리에 포함된 음악을 감상할때, 뛰어노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절대적 신임의 눈망울 속에서.... 간혹 무엇을 위해 이 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사회적 가치와 그에 대한 열망은 늘 우리의 정신을 잠식하는 강력한 지배주로 견고히 다시 자리잡게 된다.

 

책의 저자도 예기했듯이, 사회적 가치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하지 않으며 그 가치를 위한 고군분투의 아름다운 측면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가 인생 전반에 끼어들어 정신적 황폐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한다면 가치의 다양성을 재고하고 인간/인생의 궁극적 가치를 들여다 봄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다독여 주어야 한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풍족한 물질적 부의 중요성 못지 않게 정신적 부와 인간적 지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보다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 그리고 영향력과 물질적 풍족함을 위해 내가 가진 능력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

그 가운데 얻게 되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도 절망감 없이 받아 들일 것이다. 다만 가장 명심할 것은 내가 열심히 해 왔다는 증거는 반드시 남겨야 겠다. 그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다양할 것이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0) 2014.08.12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2014.06.23
불안  (0) 2014.03.3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0) 2014.02.25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격몽요결  (0) 2014.02.07

submit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2. 25. 18:05

 

정약용 저/박석무 역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를 모아 엮은 책으로, 18년이라는 긴 세월 유배지에서 아들, 형, 제자들에게 쓴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대학자로써의 그의 면모는,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 난 것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무엇보다도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일종의 홍익인간 정신이 뿌리깊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며, 그렇기에 그 힘들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학문을 연구하고 많은 저작물을 남기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아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모함으로 인해 죄를 받아 유배 생활을 하게 된 정약용은 편지 곳곳에 자신의 가문을 폐족이라 칭하며 두 아들에게 폐족으로서 과거시험을 통한 입신을 못하겠지만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후세에 도움이 되는 저작을 통해 학자는 되지 못하겠느냐며 많은 충고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아버지와 스승으로써의 자상함과 엄함, 선비로써의 지조와 절개, 학자로써의 깊은 사유를 갖춘 정약용을 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였으며 학문을 추구하는 방향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 등 수백년 전 현인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새벽예찬 저자의 삶에서도 그려볼 수 있는 학문과 사색, 자연이 다 함께 어우러져 불현듯 터지는 통찰에 대한 글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 있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 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가롭게 생각이 떠올라 그냥 운율이 나오고 저절로 시가 되어질 때 천지자연의 음향이 제 소리를 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경지일 것이다.

 

두 아들이 곤궁에 처한 가족을 안타깝게 여겨 성실히 돌봐주는 일가친적이 없다고 원망하는 편지를 보고는 오히려 두 아들에게 먼저 남을 위해 제대로 헌신해 왔는지를 따져 묻고 보답 받을 생각과 원망할 생각을 하지 말것을 충고한다.

뒷날 너희가 근심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한을 품지 말 것이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하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정약용에게 조정의 힘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죄를 면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겠냐는 예기에 발끈하며 엄중하게 꾸짖는다. 짧은 글이지만 그이 지조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림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때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는 경우이다. 이제 너는 내가 필천 홍의호에게 편지를 해서 항복을 빌고, 또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결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 깃을 해야겠느냐.(중략)

사람이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면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는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에 외침이 있어 난리가 터질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투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독서와 초서, 저술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가르침을 전하며...

내가 몇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무척 많은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읽어야 읽은 책의 의리(義理)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라.

..... 

 

초서(鈔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남의 책에서 간추려내야 맥락이 묘미가 있게 된다. 만약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곳이 있을 때는 별도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넣어야만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고기 그물을 쳐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게 마련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지식인이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것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관계할 바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이면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섬기고, 동년배의 사람이라도 너희는 그와 결의형제라도 맺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

 

나는 소싯적에 새해를 맞을 때 마다 꼭 일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작정을 해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때론 몇개원 못 가서 사고가 발생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두 아들에게 근면하고 검소함을 생활의 신조로 삼으라고 당부한다.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말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을 저녁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중략)

검(儉)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해도 볼품이 없어지지 않는다. (중략)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린다. 삼키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중략)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중략)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유하고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이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글자 아니고는 손을 댈 곳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

 

그리고 영암군수직을 맡은 제자에게 자리보전에 연연해 하지 말고 올바는 관리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

상관이 엄한 말로 나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리가 조작한 비방으로써 나를 겁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상이 부탁으로써 나를 더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릇 봉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지 않는 자는 하루도 수령의 지위에 앉아 있으면 안된다. 흉년에 백성들의 조세를 면제해줄 것을 요구하다가 상관이 들어주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가며, 상사가 요구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거절했으나 알아듣지 못하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가며, 나의 예모에 손상이 생기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간다. (중략) 만약 조마조마하고 부들부들 떨기를 구슬을 품은 자가 힘센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하여 오로지 빼앗길까 두려워한다면, 역시 그 지위를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긴 유배생활에 몸이 상하고 기력이 쇠하여 이런저런 병이 들고서도 독서와 저술활동을 그치지 않은 대학자로써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구절을 발췌해 본다.

점차로 하던 일을 거둬들여 정리하고 이제는 마음공부에 힘쓰고 싶은데 더구나 풍병은 이미 뿌리가 깊어졌고 입가에는 항상 침이 흐르고 왼쪽 다리는 늘 마비증세를 느끼고 머리 위에는 언제나 두미협 얼음 위에서 잉어 낚는 늙은이의 솜털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또 혀가 굳어져 말이 어긋나 스스로 살 날이 길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결같이 바깥일에만 마음이 치달리니, 이는 주자께서도 만년에 뉘우쳤던 바였습니다.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고 보면 세간의 잡념이 천갈래 만갈래로 어지럽게 일어나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 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것을 도로 느낍니다. 이 때문에 문득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2014.06.23
불안  (0) 2014.03.3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0) 2014.02.25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격몽요결  (0) 2014.02.07
책, 인생을 사로잡다  (2) 2014.01.12

submit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2. 23. 12:38

 

 

개인적으로 새벽의 그 잔잔한 기운과 곧 뿜어져 나올듯한 움크린 기상을 좋아하지만, 런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 책의 도입에 공감가는 글을 만나게 되었다.

 

               "새벽,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시각 ...

                                                   ...  그 깊고 푸른 심연 속으로 들어간다."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벗삼아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한 문필가의 생활과 생각의 단상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잔잔하고 소박한 내용속에 세상과 삶에 대한 통찰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고 꼭두 새벽에 기침하여 명상과 따뜻한 차로 하루를 시작하고, 소박하지만 깔끔한 음식과 자연을 벗삼은 풍요와 홀로 지내는 이의 적막함, 그 경험과 사색으로부터 얻어지는 삶의 크고 작은 통찰의 시와 글로 차곡차곡 쌓아 두는 삶... 적잖이 동경이 된다.

 

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합니다. 명상은 이성의 억제력 속에서 잠든 본능과 무의식을 깨웁니다. 
그것은 의식을 앞질러 예지와 직관이 번개처럼 터져 나오지요.

 

개인적으로 명상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고 싶지만 내공이 한참이나 모자란지라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이 글을 보며 나는 오히려 이성의 억제력이 아니라 이성의 현란한 방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저자의 삶을 가만히 그려보니, 동경되는 마음은 여전하나 실제로 내가 그런다면, 그 적막함과 고독감은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어느 방문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건 이미 저자의 내공이 범인들이 말하는 외로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라 본다. 처음 시골에 혼자 삶을 꾸려 지내기 시작할 때 자욱한 안개에게서 느낀 그의 글에서 (어쩌면 심하게 공감되는) 그의 고독감을 엿 볼 수 있었다.

 

이사 온 첫해 마당까지 점령해버리는 지독한 안개에 매혹되었지요.(중략.) 꿈과 현실의 아득한 경계를 지우며 밀리고 밀려가는 안개를 보는 게 일상이 되면서 안개를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가슴이 저릿해지는 증상은 사라졌습니다.

 

저 장막 뒤에서 어떤 혼이 웃고 있다. / 저 장막 뒤에서 / 어떤 혼이 울고 있다 // 어제 당신은 외로웠군 / 내 등 뒤에 말없이 와서 와락 끌어안은 것도 / 당신이었군 / 이 새벽 나를 찾은 것은 / 따뜻한 홍차라도 한 잔 함께 마시고 싶어서였군 - '안개가 짙다' 중

 

저자 역시 젊은 시절 방황과 비루한 시절이 있었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길로 들어선 용자라 하겠다.

스물세 살이던 해에 아무 대책 없이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요. 결혼을 하고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일도 배우고 새벽엔 학원에 나가 영어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무역영어를 익히고 업무에 익숙해진 2년쯤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문학과는 한참 멀어졌습니다. 저는 무역회사에 사표를 쓴 뒤 다시 백수가 되었지요. 다시 문학과의 연애가 시작된 것이지요. 글 쓸 곳이 마땅치 않아 다시 정독도서관을 다니며 거기서 책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중략)

30여 년을 날마다 쉬지 않고 조금씩 써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출판 일로 15.6년의 세월을 보낼 때에도 제 머릿속은 써야 할 것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출판 일을 접자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문학 때문이지요. 제 글쓰기는 존재와 언어에 대한 탐색입니다. 어쩌면 그 이전에 피의 불가피한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죠. 뭔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참 한심했었지, 그때 아무것도 / 이룬 것이 없고 / 하는 일마다 실패투성이었지 / 몸은 비쩍 말랐고 / 누구 한 사람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 내 생은 불만으로 부풀어오르고 / 조급함으로 헐떡이며 견뎌야함 했던 하루하루는 / 힘겨웠지, 그때 / 구멍가게 점원자리 하나 맡지 못했으니 // 불안은 나를 수치로 찌르고 / 미래는 어둡기만 했지 / 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 / 있었을까, 내가 / 바닷속을 달리는 등푸른 고등어처럼 /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 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 /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줄도 몰랐지 //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무지로 흘려보내고 / 그 뒤의 인생에 대해서는 /퉁퉁 부어 화만 냈지

 

  

세속을 빠져나와 얻을 수 있었다는 것들의 놀라움이란...

저 거대도시에 살 때 빈둥거리기, 낮잠, 한가로이 글쓰기, 산책하기, 몽상, 온천욕, 담소, 포도주 즐기기, 유머로 함께 사는 사람 웃기기 따위는 엄두도 못 내고, 손에 쥔 행복조차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바빳던 것이지요. 그때 이미 저는 충분히 부자였지만 마음은 늘 가난뱅이 노릇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일을 산더머처럼 쌓아놓고 씨름하다가 기껏해야 늦은 밤 호텔 바에서 양주를 마신 뒤 돌아와 쓰러져 잠드는 게 고작이었지요. 물로은 나무처럼 푸릇푸릇 커가는 아이들과도 자주 놀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하고 싶던 목판화 배우기나 가구 만들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어쩌다 주말에 식구들과 함께 유원지로 나갔다가 차들이 정체된 도로 위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혈기방장함을 짜증과 근거 없는 분노로만 분출했으니 함께 사는 이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가한 시간들 속에 숨은 존재의 충일감을 느끼지 못하고, 일이일의 숭고함, 게으름의 생산성에 대해서도 무지했음을 뒤늦게 고백합니다. 사유는 물러 준엄하고 굳건함을 도무지 알지 못하고, 메마른 가슴에서 다정다감함은 찾아보기 힘들었지요.

 

저자는 니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난 니체를 감히 논할 정도로 그의 저작물을 많이 접해보지도 못했으며 더욱이 그의 철학과 사상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듣기로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저작물에서 감명과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만큼 그의 철학에도 관심이 많이 간다.

니체는 정신의 세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애라는 은유를 써서 설명합니다. 낙타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묵묵히 그 짐을 짊어집니다. 사자는 기존의 관념과 체제를 깨고 나아가는 질풍노도의 시기, 자유를 향한 발랄한 투쟁의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죄없이 순진무구한 긍정의 시기, 새로운 삶을 빚는 가능성의 단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의 첫 번째의 단계에서도 아무 불행감 없이 잘 살아갑니다. 더 높은 단계의 정신적인 성취를 바라는 사람들은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갑니다. 책을 쓰는 지식인들이 이 단계에 가장 많이 있습니다. 무수한 오류들은 집어삼키고, 시행착오와 방황, 고독한 자기 동력과 엄격한 지적인 수련을 거치면 갈 수 있는 단계이지요. 세 번째 단계에 오른 사람들은 희귀합니다. 어린애는 순진무구한 생의 명랑성,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정신의 발랄함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인용한, 니체가 말한 정신의 단계를 보니 나는 여태껏 낙타에 머물러 있었고 크게 벗어나기도 힘들겠구나하는 애매한 안타까움이 든다. 아마 이 책의 저자는 확실히 낙타의 수준은 훌쩍 넘어선 듯 하다.

 

저자는 젊은 시절 방황 이후 문필가로써의 자질과 역량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후 나이들어 시골 산골에서 적절한(?) 은둔을 하며 자급자족과 검소함을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싶은듯 하다.

저자가 인용한 프리초프 난센의 다음 글은 세속에 찌들어 지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삶의 풍요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많이 버는 것보다는 적게 쓰는 것이 더 낫다.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예가 되어야 하지만 적게 쓰고 지낼 수 있으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적게 쓰는 사람은 더 쉽게 자기 목적을 향해 매진할 수 있을 것이며, 필요한 게 많은 사람보다 대체로 더 풍요롭고 충실한 삶을 산다." - 프리초프 난센, 핸드메이드 라이프

 

책의 도입 '웃자'라는 단상 역시, 흔해빠진 것 같은 웃음이라는 의미를 새로이 하게 만든다.

웃음은 사랑과 사람 사이에 긴장으로 만들어진 뻑뻑함을 풀어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지요. 웃음은 완고한 사람을 유연하게, 편협한 사람을 원만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웃으면서 타자의 세계 속에 동화되고 공감과 연대감을 두텁게 하지요.... 사람들은 웃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중략.)

니체라는 철학자에 따르자면 웃음은 보다 높은 인간이 되려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요.

"웃고 있는 예언자 짜라투스트라, 높이뛰기와 멀리뛰기를 좋아하는 자, 나 자신이 이 왕관을 내 머리에 얹었노라! 웃는 자의 이 왕관, 장미꽃으로 엮은 이 왕관, 형제들이여 이 왕관을 그대들에게 던져주노라! 나는 웃음을 신성하다고 말하노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내게 배울지어다-웃음을."

 

공감가는 철없던(?) 그의 경험도...

한때 비극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지요. 철이 없던 시절이었지요. 행복보다는 불행에, 기쁨보다는 슬픔에, 유쾌함 보다는 우울함에 더 탐닉했지요. 웃음은 경박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과묵하고 표정은 늘 무겁고 진지했지요. 좀처럼 웃지 않았지요. 그게 멋있다고 여겼던 게 틀림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생각이 여물지 못하고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 있지요. 문학과 철학에 심취한 소년은 웃지 않기가 세상의 경박함에서 멀어지고 진지함에는 가까워지는 일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지요.

 

나는 문필가의 글 속에서 특히 책과 독서에 대한 그들이 생각을 듣고 싶어한다. 인문서적 탐독에 대한 동기와 용기를 불러다 줘서 인가 보다.

책읽기는 우선 남과 그가 일군 세계와의 만남이요 교감이지요. 제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책의 지은이와 만나는 것이지요. 만남은 대화와 소통으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동안 뜻밖에도 내면의 들뜸은 가라앉고 고독은 위로받습니다. 책을 읽으면 강박과 고독은 그 부피가 줄고 기쁨과 지혜는 커집니다. 그리하여 제 안에서 도축장인 듯 신음하고 울부짖는 가축들은 잠이 들고 제 안의 지옥들은 문을 닫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 밀려드는 벅찬 감동과 함께 세상의 무질서와 혼돈을 제압하고 이윽고 샘풀처럼 괴는 고요와 평화가 좋았습니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  (0) 2014.03.3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0) 2014.02.25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격몽요결  (0) 2014.02.07
책, 인생을 사로잡다  (2) 2014.01.12
프랭클린 자서전  (0) 2014.01.03

submit

격몽요결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2. 7. 11:38

 

 

청소년 인문고전 독서의 추천도서로, 율곡 이이 선생께서 아이들의 교육과 인성을 위해 지은 책이라 한다.

 

이 책의 책명인 격몽요결이란 무슨 뜻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격몽이란 몽매한 아동의 지혜를 계몽하여 주는 일, 곧 교육을 말하는 것이며, 요결이란 요긴한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약 500 년 전, 대학자 율곡 이이 선생께서 아이들은 포함해 범인들을 깨우쳐주고자 한음한음 정성들여 기록했을 것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글 하나하나가 값지며 새롭다.

 

책은 학문의 중요성과 학문을 하는 자세에 대하여 제일 먼저 언급한다.

처음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우선 학문을 하는 종국적인 목적에 대하여 마음가짐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나도 꼭 훌륭한 성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속에 기약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기어 그것을 핑계삼아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대체로 자기 스스로는 뜻을 세웠다고 말하면서 힘써 앞으로 나가지 않으며, 우물쭈물하고 뒷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명색만 뜻을 세웠다 할 뿐 실지로는 공부를 하려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 뜻으로 하여금 정성을 학문에 둔다면 어질게 되는 것은 자기에게 달린 것이다. 하고자 하면 뜻이 통달할 것인데 무엇 때문에 남에게 구하며, 무엇 때문에 뒤로 미루고 기다리는가? 뜻을 세우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것은 곧 바로 공부에 힘을 기울여서 오히려 제대로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 시시각각으로 시간은 자꾸 가는데 모든 잡념을 버리고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에 달렸다. 만일 혹 뜻이 성실하고 착실하지 못하고 무기력하여 고식적으로 우물쭈물 세월만 보낸다면 나이가 다하여 죽을 때까지 무슨 성취가 있겠는가?

 

학문에 이르기 어려운 점은 옛날의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함에 있다고 하여 8가지 구습을 알려주며 이러한 습관은 아주 끊어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 하나는, 그 마음과 뜻을 게을리하고 그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 다만 한가하고 편한하기만을 생각하고, 몹시 구속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 둘은, 항상 움직이는 것만 생각하여 안정을 지킬 수 없고, 분주히 드나들면서 떠들며 헛되이 날을 보내는 것이다. 그 셋은, 같은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싫어하여 옛날부터 내려오는 누속(陋俗)에 골몰하고, 조금 고치려 하다가도 남들에게 따돌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넷은, 글이나 말로써 시속(時俗)에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경전을 표절해다가 알맹이 없는 글을 꾸미는 것이다. 그 다섯은, 편지 쓰기에 공을 들이고, 거문고 타고 술마시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를 깨끗한 운치라고 하는 것이다. 그 여섯은, 한가히 사람을 모아서 바둑이나 장기두기를 좋아하고 배불리 먹기를 종일토록 하면서 다만 남과 다툼을 일삼을 뿐이다. 그 일곱은, 부하고 귀한 것을 부러워하고 빈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면서 나쁜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 여덟은, 즐기고자 하는 욕심에 절제가 없어서 끊고 억제할 수 없고, 재물의 이익과 노래와 여색의 그 맛이 달콤하니, 이것을 익혀 마음을 해치는 사람은 대게 이러한 것이고, 나머지는 다 들기 어렵다.

 

학문은 이치를 살피기 위한 것이며 이치를 연구하는데는 책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학문의 길로 들어가는 것은 이치를 연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연구함에는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이 마음을 쓴 자취와 선과 악의 본받아야 할 것과 경계하여야 할 것이 모두 책 속에 쓰여있기 때문이다.

 

무릇 책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하게 팔짱을 끼고 무릎을 꿇고 똑바로 앉아서 공경스럽게 책을 대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극진히 하며, 자세히 생각하고 두루 살펴서 깊이 있을 이해하여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하는 방법을 탐구할 것이다. 만일 입으로만 읽을 뿐 마음에 체험하지 못하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나는 나내로일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오서오경(五書五經)을 번갈아가며 익숙해지도록 읽어 이해하여 그 사리(事理)를 깨달아서 뜻과 이치로 하여금 날로 밝아지게 한다. (중략)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에 관한 책을 읽어서 옛날과 지금의 역사에 통달하고 사물의 변화를 알아서 이로써 학식과 견문을 발전시킨다.

--------------------------------------------------------------------------------------------

오서: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보통 사서라고 하는데, 여기에 소학을 더하여 일컫는 말
오경: 시경, 서경, 역경의 삼경에 예기, 춘추를 더하여 일컫는 말

 

대개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책을 익숙히 읽어 그 뜻을 모두 깨달아서 통달하여 의심이 없는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많이 읽기를 탐하고, 그것에서 이것저것을 얻으려고 바쁘고 분주하게 여러 책을 이것저것 읽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세에 관한 부분을 발췌해 본다

같은 마을 사람 중에 착한 사람이면 반드시 정을 통하여 친하게 사귀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나쁜 말로 그의 더러운 행실을 남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다면 범연(泛然)하게 대하여 서로 왕래하지 않으며, 만일 그 전부터 서로 아는 사람이면 서로 만났을 적에 다만 날이 춥습니다, 덥습니다 정도의 인사를 할 뿐이고 딴 말을 교환하지 않으면 자연히 차차 멀어지게 되어 원망과 노여움을 사는 데 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0) 2014.02.25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격몽요결  (0) 2014.02.07
책, 인생을 사로잡다  (2) 2014.01.12
프랭클린 자서전  (0) 2014.01.03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0) 2013.12.29

submit

책, 인생을 사로잡다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1. 12. 23:06

 

이석연 저 | 까만양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의 책이다.

저자의 여러 화려한 이력보다, 젊은 날 20개월 동안 절에 들어가서 고전,역사,문학서 등 300여 권을 독파 했다는 남다른 경험에 큰 관심이 간다. 대학 진학을 앞 두고 행한 일이라 하는데 어찌 보면 어린 나이라 할 수 있는 그 시기에 이런 결심을 하고 실천했다니, 역시 남다르다 하겠다.

 

이 책을 본 후,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책을 읽으며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에도 책을 읽다가 모호한 단어나 사자성어 같은 것이 나오면 가끔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항상 그러지는 못했다. 저자의 말처럼 '문맥의 흐름에 맞춰 대강 이런 뜻이겠구나' 하며 넘긴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라는 충고를 하며,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의심나는 일이나 의심나는 글자가 있으면, 즉시 유서나 자서를 자세히 참고하라.

글을 읽을 때에는 명물이나 글 뜻이 어려운 본문은 그때 그때 적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라.

선배인 장학성과 나의 친척인 복초 이광석은 남을 만날 때 마다 물었다.

- 책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이덕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독서는 읽는다는 게 제일의 목적이 아니라 이해를 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주된 목적이다.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그래서 중요하다. 
... (중략) ...

사전을 참조해 가며 읽는 독서는 더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유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독서의 속도에 가속이 붙어 점점 수월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덕무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금산사에서 읽었던 여러 책들의 내용이 생생하게 남아 내 삶의 자양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양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질적인 것을 추구하며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열권의 책을 서투르게 읽는 것보다 한권의 책을 정교하게 읽는 게 마음의 양식으로 남는다는 것은 절대 분변의 진리다.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독서일기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고 한다. 물론 독서일기도 자유형식으로 꾸준히 작성하며 글을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귀와 함께 자신의 감정과 고민, 느낌을 같이 메모해 두고 보관해 왔다고 한다. 저자가 아들에게 물려 주고 싶은 것도 바로 이렇게 작성된 수 많은 '독서일기'라 한다.

나는 매일 생활의 단면과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을 일기로 남겼다. 독서와 일기쓰기는 내 삶의 자양분이자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원천이 되었다.
... (중략) ...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뭔가를 자주 기록해서 자신의 삶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글쓰기가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 (중략) ...

옛날에 읽었떤 책에 대한 새로운 생각, 앞으로 읽고 싶은 책에 대한 기록,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 책과 얽힌 소소한 일화 등 독서일기의 소재는 생각해보면 실로 다양하다. 책에 대한 언급 없이 그날 있었던 내용들을 써도 좋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의 단상과 그것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에 대한 일상적인 성찰을 함께 써나가는 것이 독서일기라고 보면 된다.

 

책의 서문에서도  독서일기로 다져신 글쓰기의 위력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대학을 지방에서 나왔지만 행정고시, 사법시험을 어렵지 않게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이는 폭넓은 독서로부터 얻은 주변지식의 풍부함과 글쓰기로 다져진 표현력이 답안에 반영된 결과였다.

 

읽기와 쓰기는 따로 있지 않다며 일기 못지않은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금의 여러 현인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필사'의 의미와도 같은 것이리라.

"책은 많이 읽는 데 뭘 좀 쓰려면 막막해져 한 두 문장 쓰고 나면 그걸로 끝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읽기와 쓰기의 밀접한 관련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고민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나 단락이 있으면 그자리에서 내용을 수첩에 천천히 옮겨 적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미처 깨닫지 못한 문맥의 의미가 구체화되어 그 뜻을 체득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말로 들어 인정하는 것보다 직접 시도해보지 않으면 그 효과를 체감하기가 힘들다. 이해하기 힘든 문장은 물론 아주 좋은 문장들도 베껴씀으로 인해 그 맛과 풍미가 더 깊어진다.

... (중략) ...

읽고, 쓰고, 외우는 삼단계의 과정을 거치면 어떤 내용이든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되어 적재적소의 순간에 자유자재로 활용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은 저자의 표현대로 '4GO' 전략으로 매듭지어 진다.

 - "베께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고, 외우고"

 

그리고 '책 속에 책이 있다'며 각주와 참고문헌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찾아 읽어보라는 충고가 와 닿았다. 지금껏 책에서 저자가 본문을 통해 직접 언급한 책을 제외하고는 각주나 참고 문헌으로부터 독서 목록을 구성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읽기의 독서를 넘어 책을 저술하라고 권고한다.

독서에 대한 욕심은 결국 한 권의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막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면 연필을 깍아 놓고 필통 속에 고이 모셔두는 것과 매한가지다. 깎았으면 쓰는 게 정석이다. 연필심이 다 닳으면 또 깎아서 쓰면 된다. 그렇듯 독서의 귀결은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작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중략) 읽은 만큼 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물론 가벼히 접근할 수 없다는 충고와 함께...

소설가 조정래는 5백 권의 책을 읽지 않고는 소설을 쓰려고 펜을 들지 말라고 했다 (중략)

알량하게 몇 권 읽어 놓고 나도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쌀도 없이 밥을 짓겠다는 것처럼 맹랑하고 터무니없는 욕심에 불과하다.

 

책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도대체 무얼 쓰야 하는지 부터가 문제일 텐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쓰고 싶은 것을 쓰면 된다. 독서의 감상이든, 처세에 관한 것이든, 전공에 관한 것이든 자기가 많이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주제를 잡아서 쓰면 된다.

프랑스의 시인 말라르메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책이 될 수 있다. 유명하고 똑똑한 사람만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고 나서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답 역시 단순 명료하다.

첫째 난관은 문장일 것이다. (중략)

"읽고, 베끼고, 외우는"것을 충실히 하면 문장은 저절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독서메모, 독서일기의 저력은 자신의 문장이 완숙해진다는 점으로 표출된다.

...(중략)...

한 단락의 글을 쓰면 한 장의 글을 쓸 수 있고, 한 장의 글을 쓰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진정한 독서는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으로 완성된다. 저자가 되라!"

 

이후 저자의 젊은 시절부터 소장해온 책과 그 내용 및 느낀점을 간략히 소개하는데 제일 먼저 소개된 사마천의 <사기>는 나 역시 관심있게 여기던 책이라 반가웠으며 주말에 당장 도서관에서 빌려오게 되었다. 먼저 개론서부터 보고 이후 열전, 세가, 서, 본기, 표의 순으로 이어서 보고 싶다.

 

그리고 이어서 소개된, 법구경과 유성룡의 징비록에 관심이 갔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0) 2014.02.23
격몽요결  (0) 2014.02.07
책, 인생을 사로잡다  (2) 2014.01.12
프랭클린 자서전  (0) 2014.01.03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0) 2013.12.29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0) 2013.12.26
  1. 박현수


    가장 감명깊었던 책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냐고 누군가 물을 땐
    항상 헤르만헤세의 데미안 이라고 말합니다. 사춘기때 그책이 준 의미가 남달라서...
    퇴근 길에 중고서점에 데미안 을 싸게 팔길래 구입했는데 --;
    책장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

submit

프랭클린 자서전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1. 3. 21:15

 

 

"당신의 인생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바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랭클린 다이어리에 항상 빼 놓지 않고 삽입되는 금언으로 프랭클린이 한 대표적인 말이다. 그 자신이 철저히 지켜왔던 계획적인 삶의 근간이 되는 인생 철학인 셈이다.

 

이 책은 프랭클린 자신의 가족적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과,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 의해 성공 철학의 대중적 보급(?)을 목적으로 쓰여진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도입부에 다음과 같이 자서전을 쓰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나는 오래 전부터 조상의 일화를 수집하는 것을 즐겼다. 조상들의 이야기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버리지 않았다. (중략)

너도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궁금하리라 믿는다. 너는 나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마침 시골에서 일주일 동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네게 이 글을 쓰고 있다. (중략)

나는 가난하고 이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큰 행복을 누려서 그런 대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내 이름도 알렸다.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나를 성공으로 이끈 방법들을 내 후손들도 알고 싶어하리라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처지에 맞는 방법을 골라서 그대로 따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중반부에 대중을 위해 쓰게 된 계기를 언급한다.

메모: 여기까지는 처음에 밝힌 의도로 쓴 것이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여러 가지 자잘한 가족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 뒤의 글은 여러 해 뒤에 쓴 것으로 다음 편지들의 요청에 따라 대중을 염두해 두고 쓴 것이다. 중간에 중단된 이유는 독립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라 그의 경험과 사상을 고스란히 직접 전해 듣는 듯 한 느낌이 좋았다.

그의 성공 습관 근간에는 근면과 성실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대에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한 12가지 덕목을 세우고(실제 13가지 덕목이지만 마지막 한 가지(겸손)는 12가지 덕목을 세운 이후에 추가된 것이다.) 이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주간 기록표를 만들고 매일매일 체크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청춘이라 하겠다. 이렇게 하는데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덕목 자체가 특별한 비법이진 않을테다. 그도 그럴것이 덕목 자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보편적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덕목과 원칙을 뚜렷히 세우고 자신의 삶에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성공의 비법인 것이다. 물론 이 것이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아무나 성공할 수 없으며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특별한 이유인 것이다.

 

열여섯 살쯤 되었을까. 그때 나는 우연히 트라이언이 쓴 채식을 권장하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 보기로 결심했다.(중략)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면 으레 그렇듯이 머리가 훨씬 맑아지고 이해도 빨라져서 내 공부는 나날이 발전해 갔다.

 

아무리 똑똑하고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거만하고 독단적인 태도로 나오면 그가 하는 선한 일은 그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법이니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자칫하면 정떨어지게 해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중략)

또 다른 이의 지식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자신의 발전을 이루기를 바라면서도 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만 고집하면 안 된다. 신중하고 분별 있고 따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네 잘못을 알아채더라도 굳이 짚어 주지 않을 것이다. 포프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듯해야 하며, 그들이 모르는 것은 잊어버린 것으로 취급해 주어야 한다." - 포프

 

나는 행복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함, 성실함, 완전함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내 결심을 적어 놓았고 평생 실천하기로 했다. 그 글은 아직도 내 일기에 남아 있다. 성경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경이 금한다고 해서 악한 행동이고 성경이 명한다고 해서 선한 행동인 것은 아니다. 어떤 행동이 금해진 것은 우리에게 해롭기 때문이고, 하도록 명해진 것은 우리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은 그 행동 자체의 본질과 주변의 모든 상황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신념은 위험할 수도 있었던 내 젊은 시절을 잘 지켜 주었다.

 

내가 부지런히 일했다는 예기를 이렇게 강조해서 장황하게 늘어 놓은 것은 내 자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후손들이 이 글을 읽고 부지런함의 미덕이 얼마나 유익한가를 깨닫고 또 그 덕을 지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때 회원들을 모으려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예 거절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싫은 기색을 보였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은 아무리 유익한 계획이라도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그가 자신들보다 약간이라도 더 유명해질까 봐 돕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꾸었다. 가능한 한 나 자신을 숨기고, 이 계획은 '몇몇 친구들'의 계획인데 그들이 당신은 분명히 책을 좋아할 거라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방법은 잘 먹혀 들어갔고 나중에는 모금을 할 일이 있으면 이 방법을 썻다. 이 방법으로 실패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다. 잘난 체하지 않고 당장에는 조금함 참으면 나중에 더 큰 보상을 받게 된다. 누가 이런 좋은 일을 했는지 얼마 동안 묻혀 있으면 누군가 허영심 많은 사람이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을 시기하는 사람이라도 가짜를 폭로하고 당신의 진가를 세상에 알릴 것이다.

 

나는 장로교육을 받았었다. 나는 그 교파의 교리 중에 신의 영원한 의지, 선민 사상, 영벌 같은 것들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의심스러운 것도 많았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인 원칙들을 아예 다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한다는 것,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섭리로 주관하고 있다는 것, 신이 가장 기뻐하는 봉사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라는 것, 우리의 영혼은 불멸하며 모든 악은 단죄받고야 만다는 것, 덕행은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꼭 보답을 받는다는 것 등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유명한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을 세우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이때쯤 나는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고자 하는 무모하고도 어려운 계획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한치의 잘못도 없는 완전한 삶을 살고 싶었다. 원래부터 타고난 것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영향으로 빠져들 수 있는 성향이나 습관 모두를 정복하고 싶었다. 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른 것을 피하고 옳은 것만 행하는 것이 쉽게만 보였다. 그러나 곧 이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그것에만 온통 신경 쓰고 있는 사이에 불쑥 다른 잘못을 저질러 버리는 것이었다. 소홀한 틈을 타서 나쁜 습관이 나타났고 성향을 이성으로 이기기에는 너무 강했다. 그렇게 얼마를 보낸 뒤 완벽하게 덕스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속의 신념만으로는 실수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늘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행동을 하려면 반대되는 습관들을 깨부수고 좋은 습관을 익혀야 한다. 이런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중략)

우선 그때까지 읽은 책에서 보았던 수많은 덕목들을 열거해 보았다. (중략)

나는 명확함을 기하기 위해 더 적은 덕목에 규율을 길게 붙이는 것보다는 덕목을 조금 더 늘어놓고 각각의 덕목에 수반되는 규율을 자세히 붙이기로 했다.

 

이어서 13가지 덕목을 조목조목 기술한다.

1. 절제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

2. 침묵

자신이나 남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 쓸데없는 말은 피하라.

3. 질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라. 모든 일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라.

4. 결단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라. 결심한 것은 꼭 이행하라.

5. 절약

자신과 다은 이들에게 유익한 일 외에는 돈을 쓰지 말라

6. 근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언제나 유용한 일을 하라. 안 해도 될 행동은 끊어 버려라

7. 진실

남을 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라. 순수하고 정당하게 생각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하라.

8. 정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응당 돌아갈 이익을 주지 않거나 하지 말라.

9. 중용

극단을 피하라. 상대방이 나쁘다고 생각되더라도 홧김에 상철르 주는 일을 삼가라.

10. 청결

몸과 의복, 습관 상의 모든 것을 불결하게 하지 말라.

11. 평정

사소한 일, 일상적인 일이나 불가피한 일에 흔들리지 말라.

12. 순결

건강이나 자손 때문이 아니라면 성 관계를 피하라. 감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약해지거나, 자신과 다른 이의 평화와 평판에 해가될 정도까지 하지 말라.

13.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내 덕목은 처음에는 12가지뿐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퀘이커교도 친구 하나가 살짝 귀듬해 주기를 내가 약간 오만하다는 평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자만심이 툭툭 드러나고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할 때 내가 옳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례하게 상대방을 꺽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몇가지 예를 얘기해 주었는데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결점 또는 어리석음을 고치기로 마음 먹고 목록에 '겸손'을 추가시키고 그 단어의 뜻을 광범위하게 잡았다.

 

그리고 이 13가지 덕목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이 확인했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피타고라스의 금언집의 충고(하루의 행동을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기 전에는 잠들지 말 것이다. 규칙에 어긋난 일이 있었는가? 오늘 한 일은 무엇인가? 할 일을 빠뜨린 것은 없는가?)에 따라 매일매일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점검하는 방법을 짜냈다.

 

나의 후손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것은 그들의 조상이 79세가 되도록 행복하게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함께 이 조그만 방법 덕분이라는 것이다.

'절제' 덕으로 나는 일생을 건강하게 살았고 지금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근면'과 '절약' 덕으로 젊은 시절의 어려운 환경을 쉽게 이겨 냈고 재산도 모았다. 거기에 많은 지식까지 겸비여 쓸모 있는 시민이 되었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 괜찮은 평판도 얻었다. '진실'과 '정의' 덕으로 나라의 신뢰를 얻어 명예로운 직책을 맡았다. 또 원하는 만큼 완전히 습득하지는 못했어도 이 많은 덕목들의 일치된 힘으로 항상 침착할 수 있었고 기분 좋은 대화를 할 줄 알았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고 젊은이들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내 후손 중에 몇 명이라도 이를 본받아 그 덕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동업은 항상 원만하게 진행되고 기분좋게 끝났다. 이는 사전에 미리 예방책을 잘 세워 둔 덕이 크다. 우리는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과 상대방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들을 계약서에 아주 명백하게 못 박아 두었다. 그래서 싸울 일이 전혀 없었다. 나는 동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예방책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계약할 당시에야 이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했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부딪치다 보면 약간의 질투심과 의견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 사업상 번거로운 일이나 책임 져야 할 일이 있을 때 자기만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결국 둘의 우정에 금이 가고 소송이나 다른 불미스러운 결과를 맞기 일쑤다.

 

이 일을 치르면서 나는 사람들이 일을 할 때 가장 만족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을 한 날은 모두들 아주 친절하고 기분들이 좋았으며 하루 일을 끝냈다는 뿌듯함에 저녁을 즐겁게 보냈다. 그러나 일을 못 하는 날에는 난폭해졌고 쉽게 다투었으며 고기나 빵 같은 음식에 트집을 잡았고 계속 이기죽거렸다. 이런 모습을 보니 선장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 선장은 부하들에게 계속 일을 시켜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한번은 항해사가 부하들이 일을 모조리 다 해서 더 이상 시킬 것이 없다고 하자 그는 "그렇다면 닻을 윤이 나도록 닦으라고 하게"라고 말했다.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격몽요결  (0) 2014.02.07
책, 인생을 사로잡다  (2) 2014.01.12
프랭클린 자서전  (0) 2014.01.03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0) 2013.12.29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0) 2013.12.26
책의 힘  (1) 2013.12.14

submit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3. 12. 29. 22:33

 

존 맥스웰 저/김고명 역/전옥표 감수

 

전형적인 동기부여, 자기계발서이다. 근래 자기계발서를 지속적으로 읽는 이유는 동기부여의 지속성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형적이라는 표현에 스며있는 어찌보면 뻔한 스토리의 내용일지라도 동기부여의 지속성에 기여한다면 큰 가치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강조하는 15가지 지침을 직접 실천한 역시 전형적인(?) 인물이다. 물론 저자역시 15가지 지침을 미리 정해두고 이를 실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천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립시킨 결과 일테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도적 성장의 출발을 예기하고 있다.

"40년 전 성장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몰랐다. 그저 나에게 성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의도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이다"

 

의도성이라는 표현이 다소 작위적이고 비순수성을 지닌 느낌을 주지만 이것은 계획적인 삶을 칭하는 표현으로 무턱된 자기계발이 아닌 묙표와 성장에 초점이 올바른 방향으로 정해진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즉, 효과적인 성장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의 실천을 말하는 것이다.

 

책은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된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이. 명예를 높이 쌓았다는 것이.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

인생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중략)...

인생이라는 경기에 성실히 임했다는 자부심이다.

 

그래.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었느냐 이전에 어떻게 살았냐는 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돈과 명예와 같은 객곽적인 지표를 달성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삶에 충실했는지에 대한 답을 떳떳히 할 수 있어야 하는 않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꼭 당부하고 싶다.

하루 5분, 그날의 일과를 되돌아보라.

하루 10분,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라.

하루 15분, 마음속의 꿈을 재확인하라.

 

인생에서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 자신의 속도로 가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계속 가라.

 

이 책에서 제시하는 15가지 지침을 사전 그대로 공식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저자는 뭔가 이론적 배경이 필요했기에 15가지 지침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론화 했지만 중요한 것은 느낌과 실천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15가지 지침이라는 이론적 전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나하나의 지침에 깔려 있는 저자의 경험과 동기부여, 실천으로 이어지는 강한 자극만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성공보다는 개인적인 성장에 삶의 초점을 맞추라 한다. 뭔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성공을 위한 목표 설정,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과 성취의 달콤함과 같은 일반론을 뛰어넘는 근원적인 동기의 자극이다. 지금까지 성공에 대한 욕심보다 성장이라는 근원적인 삶의 충실함은 간과하지 않았나 한다.

나는 보다 나은 일을 하거나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려 했다. 그러자 미래가 열렸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게 되었다.

 

"나는 목표가 아니라 성장을 의식하려 노력했다."

 

매일매일의 작은 실천, 꼭 지켜야하는 작은 원칙들이 결국 성장과 성공의 열쇠라는 조언이 참으로 와닿는다.

만약 인생에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건강, 일, 가족 등)이 있다면 한꺼번에 해치우려 하지 말고 날마다 조금씩 해결해나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자존감도 높이고 큰일도 할 수 있다. 자존감은 하루하루의 긍정적인 습관, 행동, 결정을 먹고 자라게 마련이다.

 

그리고 의도적인 되돌아보기를 강조한다. 마치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틀린 문제를 되돌아 보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오답노트의 중요성은 학생들의 시험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은 다짜고짜 시험부터 치르게 한 뒤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어려운 스승이라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단, 시간을 내서 경험을 되돌아보는 사람에게만 그렇다. 되돌아보지 않으면 시험만 치르고 가르침은 영영 못 받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날마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데, 이는 잠깐 멈춰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멈추는 여유는 그만큼 중요하다.

 

"하루를 마칠 때 자신이 한 일을 되새겨보라. 그러면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자극하게 될 것이다" - 짐 론

 

새로운 것을 제대로 배우려면 하루를 마칠 때 따로 시간을 내 자신에게 질문하고 배운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날마다 하루를 돌아보고 중요한 교훈을 찾는 습관을 들였다. 최고의 스승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평가를 거친 경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기 삶의 사명을 모르면 인생의 후반전에서 멀리 갈 수 없다. 당신의 사명을 한두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사명을 알아내려면 자신에게 질문(그리고 적나라할 만큼 정직한 대답)을 해야 한다. 나는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가? 나는 무엇을 이뤘는가? 내가 남달리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인생의 전반전 동안 나를 따라다닌 미해결 과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면 마음속으로 갈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향해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자신의 사명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성장을 위한 환경의 중요성도 말하고 있다.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는 환경보다 자극 받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 자신이 직접 그런 환경을 찾아 다닌 것 처럼.

자신과 환경을 동시에 바꾸면 성공 가능성도 커지고 속도도 빨라진다. 내가 처음으로 성장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때 알고 보니 성장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주위에는 나처럼 성장에 열의를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본보기로 삼을 사람도 없다시피 했다. 내 작은 세상의 구성원은 열심히 일해서 밥벌이에 만족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보다 많은 것을 원했다. 꼭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계절이 다 지나갈 때가지 시간만 나면 자리에 앉아 성장 환경을 고민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환경에는, 인간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자기보다 큰 인물과 어울리는 것은 때로 불편하지만 큰 도움이 된다. 이탈리아 속담에 "선인과 어울리면 선인이 하나 늘어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울려야 할 '큰' 인물은 누구일까? 진실한 사람, 긍정적인 사람, 직업적으로 우리보다 앞선 사람, 우리를 쓰러뜨리지 않고 일으켜 세우는 사람, 저급한 길이 아니라 고매한 길을 걷는 사람, 무엇보다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엘머가 나에게 물었다.

"부지깽이를 뜨겁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내가 조용히 웃자 그는 "불가에 두면 된다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도 부지깽이의 쇠와 같다고 덧붙였다. 환경이 차가우면 우리도 차가워지고, 환경이 뜨거우면 우리도 뜨거워진다는 예기였다.

"성장하고 싶으면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훌륭한 곳에 가고, 훌륭한 행사에 참석하고, 훌륭한 책을 읽고, 훌륭한 강연을 듣게."

 

그리고 의도성을 가진 계획, 체계적이고 일관된 끈기 있는 삶의 중요성을 말한다.

나에게는 성장과 정보 수집을 위한 체계가 있다. 나는 한 달에 책을 네 권 읽는다. 가볍게 읽는 책 두 권과 깊이 파고드는 책 두 권이다. 운전할 때는 주로 CD를 듣는다. 목회 활동을 하며 1주일에 한번 설교할 때는 매주 다섯 편씩 들었다. 정말로 맘에 들면 CD의 내용을 옮겨 적은 다음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읽었다.

 

장기적으로 성공을 누리고 싶다면 날마다 일관성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공의 비밀은 일상적인 일에 있다. 어떤 체계를 만들든 일관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그렇게 만든 체계를 끈기 있게 따라야 한다. 날마다 하는 일을 바꾸지 않는 한 인생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NBA에서 열정을 불태운 감독 빌 머슬먼이 2000년에 숨을 거뒀을 때, 장례식장에서 한 노신사가 그의 아들 에릭에게 다가와 고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언젠가 그는 2차선 도로를 달려 오하이오 주 오빌로 가는 길에 열 한 살짜리 남자아이가 오른손으로 농구공을 드리블하며 달리는 것을 봤다. 그는 차를 세우고 물었다.

 

"어디로 가니?"

소년은 드리블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오빌로 갑니다."

"오빌은 여기서 1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네, 알아요."

"거기 가서 뭐 하려고?"

"왼손으로 드리블해서 집으로 돌아오려고요."

 

노신사는 에릭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아이가 자네 부친이었네."

 

성장을 위한 진지한 노력에는 좋은 성품 기르기도 포함된다.

빌 스롤은 직업에 필요한 능력에만 신경 쓰고 성품을 등한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인간관계가 망가지는 것은 물론 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 스롤은 이를 두고 힘없는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이 경우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다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결국에는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벗이여, 누구도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마무리를 할 수는 있다네." - 카를 바르트

 

설탕을 듬뿍 바른 타르트는 누가 봐도 날씬한 허리의 적이다.

밤에 세 시간씩 <<댄싱 위드 더 스타>>와 <<NCIS>>를 보면 당연히 좋은 책을 읽거나 훌륭한 음악을 들을 시간이 세 시간씩 줄어든다. 좋은 운동화를 산다고 당장 마라톤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종이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왜 몹쓸 습관에 비합리적으로 종속되어 있는가? 즉각적인 만족을 바라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면 생각 없이 그저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동물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회사에서 설비 고장으로 생산이 아예 중단되자 전문가를 불러 생산설비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전문가는 작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나타났다. 몇 분 동안 말없이 기계 주위를 맴돌던 그는 기계의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그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가방에서 작은 망치를 꺼내 살살 두드렸다. 그러자 기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전문가는 조용히 자리를 떳다.

다음 날 청구서를 받은 설비 담당자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수리비가 무려 1,000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전문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상세한 명세서를 보내주지 않으면 절대로 지급할 수 없습니다."

곧바로 다음과 같은 청구서가 도착했다.

 

망치질 - 1달러

망치질이 필요한 지점을 파악한 것 - 999달러

 

당신의 회의주의는 합리적인 생각과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근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뿌리는 정신의 오물이다. 당신의 의심은 예리한 생각이 아니라 습관적인 생각의 산물이다. 오래 전 잘못된 판단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인 당신은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비뚤어진 생각을 진리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 까닭에 이미 어린 나이에 온갖 획기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대담한 실험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제 예전에 당신이 자신에게 품었던 믿음을 되찾을 때다.

 

나는 '코치'라는 말을 좋아한다. 예전에 케빈 홀의 책 <<열망>>에서 읽었는데, 이 말은 15세기 헝가리의 콕스 지방에서 개발된 마차(coach)에서 따왔다고 한다. 마차는 원래 왕족의 이동 수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중품, 우편물, 일반 승객도 수송하게 됐다. 케빈에 따르면 "'코치'는 귀한 사람을 지금 있는 곳에서 그 사람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데라가는 사물 혹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남았다."고 한다. (중략) 케빈은 '코치의 다른 이름'이라는 글에서 코치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센세이'는 길을 앞서 간 사람이다. 무술에서는 사부를 지칭한다.

산스크리트어권에서 '구루'는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갖춘 사람이다. '구'는 어둠, '루'는 빛을 뜻하므로 구루는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티베트에서 '라마'는 영성이 깊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는 최고의 스승이다.

이탈리아에서 '마에스트로'는 음악의 대스승이다. 이는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의 약어로 본뜻은 성가대 지위자다.

프랑스에서 '튀퇴흐'는 개인교사다. 이 말의 어원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본래는 후견인을 가리켰다.

영국에서 '가이드'는 길을 알고 알려주는 사람이다. 더 나은 길을 보고 가르쳐주는 능력을 암시한다.

그리스에서 '멘토르'는 현명하고 믿음직한 조언자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멘토르는 상대를 보호하고 지지해주는 조언자를 의미한다.

 

스스로에게 강한 자극을 주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전옥표

 

"만일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시도해보겠는가?" - 로버트 슐러

 

'Book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인생을 사로잡다  (2) 2014.01.12
프랭클린 자서전  (0) 2014.01.03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0) 2013.12.29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0) 2013.12.26
책의 힘  (1) 2013.12.14
최고의 공부  (0) 2013.12.04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