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찬 : 장석주 산문집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 2. 23. 12:38

 

 

개인적으로 새벽의 그 잔잔한 기운과 곧 뿜어져 나올듯한 움크린 기상을 좋아하지만, 런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 책의 도입에 공감가는 글을 만나게 되었다.

 

               "새벽,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시각 ...

                                                   ...  그 깊고 푸른 심연 속으로 들어간다."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벗삼아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한 문필가의 생활과 생각의 단상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잔잔하고 소박한 내용속에 세상과 삶에 대한 통찰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고 꼭두 새벽에 기침하여 명상과 따뜻한 차로 하루를 시작하고, 소박하지만 깔끔한 음식과 자연을 벗삼은 풍요와 홀로 지내는 이의 적막함, 그 경험과 사색으로부터 얻어지는 삶의 크고 작은 통찰의 시와 글로 차곡차곡 쌓아 두는 삶... 적잖이 동경이 된다.

 

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합니다. 명상은 이성의 억제력 속에서 잠든 본능과 무의식을 깨웁니다. 
그것은 의식을 앞질러 예지와 직관이 번개처럼 터져 나오지요.

 

개인적으로 명상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고 싶지만 내공이 한참이나 모자란지라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이 글을 보며 나는 오히려 이성의 억제력이 아니라 이성의 현란한 방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저자의 삶을 가만히 그려보니, 동경되는 마음은 여전하나 실제로 내가 그런다면, 그 적막함과 고독감은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어느 방문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건 이미 저자의 내공이 범인들이 말하는 외로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라 본다. 처음 시골에 혼자 삶을 꾸려 지내기 시작할 때 자욱한 안개에게서 느낀 그의 글에서 (어쩌면 심하게 공감되는) 그의 고독감을 엿 볼 수 있었다.

 

이사 온 첫해 마당까지 점령해버리는 지독한 안개에 매혹되었지요.(중략.) 꿈과 현실의 아득한 경계를 지우며 밀리고 밀려가는 안개를 보는 게 일상이 되면서 안개를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가슴이 저릿해지는 증상은 사라졌습니다.

 

저 장막 뒤에서 어떤 혼이 웃고 있다. / 저 장막 뒤에서 / 어떤 혼이 울고 있다 // 어제 당신은 외로웠군 / 내 등 뒤에 말없이 와서 와락 끌어안은 것도 / 당신이었군 / 이 새벽 나를 찾은 것은 / 따뜻한 홍차라도 한 잔 함께 마시고 싶어서였군 - '안개가 짙다' 중

 

저자 역시 젊은 시절 방황과 비루한 시절이 있었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길로 들어선 용자라 하겠다.

스물세 살이던 해에 아무 대책 없이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요. 결혼을 하고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일도 배우고 새벽엔 학원에 나가 영어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무역영어를 익히고 업무에 익숙해진 2년쯤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문학과는 한참 멀어졌습니다. 저는 무역회사에 사표를 쓴 뒤 다시 백수가 되었지요. 다시 문학과의 연애가 시작된 것이지요. 글 쓸 곳이 마땅치 않아 다시 정독도서관을 다니며 거기서 책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중략)

30여 년을 날마다 쉬지 않고 조금씩 써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출판 일로 15.6년의 세월을 보낼 때에도 제 머릿속은 써야 할 것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출판 일을 접자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문학 때문이지요. 제 글쓰기는 존재와 언어에 대한 탐색입니다. 어쩌면 그 이전에 피의 불가피한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죠. 뭔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참 한심했었지, 그때 아무것도 / 이룬 것이 없고 / 하는 일마다 실패투성이었지 / 몸은 비쩍 말랐고 / 누구 한 사람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 내 생은 불만으로 부풀어오르고 / 조급함으로 헐떡이며 견뎌야함 했던 하루하루는 / 힘겨웠지, 그때 / 구멍가게 점원자리 하나 맡지 못했으니 // 불안은 나를 수치로 찌르고 / 미래는 어둡기만 했지 / 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 / 있었을까, 내가 / 바닷속을 달리는 등푸른 고등어처럼 /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 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 /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줄도 몰랐지 //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무지로 흘려보내고 / 그 뒤의 인생에 대해서는 /퉁퉁 부어 화만 냈지

 

  

세속을 빠져나와 얻을 수 있었다는 것들의 놀라움이란...

저 거대도시에 살 때 빈둥거리기, 낮잠, 한가로이 글쓰기, 산책하기, 몽상, 온천욕, 담소, 포도주 즐기기, 유머로 함께 사는 사람 웃기기 따위는 엄두도 못 내고, 손에 쥔 행복조차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바빳던 것이지요. 그때 이미 저는 충분히 부자였지만 마음은 늘 가난뱅이 노릇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일을 산더머처럼 쌓아놓고 씨름하다가 기껏해야 늦은 밤 호텔 바에서 양주를 마신 뒤 돌아와 쓰러져 잠드는 게 고작이었지요. 물로은 나무처럼 푸릇푸릇 커가는 아이들과도 자주 놀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하고 싶던 목판화 배우기나 가구 만들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어쩌다 주말에 식구들과 함께 유원지로 나갔다가 차들이 정체된 도로 위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혈기방장함을 짜증과 근거 없는 분노로만 분출했으니 함께 사는 이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가한 시간들 속에 숨은 존재의 충일감을 느끼지 못하고, 일이일의 숭고함, 게으름의 생산성에 대해서도 무지했음을 뒤늦게 고백합니다. 사유는 물러 준엄하고 굳건함을 도무지 알지 못하고, 메마른 가슴에서 다정다감함은 찾아보기 힘들었지요.

 

저자는 니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난 니체를 감히 논할 정도로 그의 저작물을 많이 접해보지도 못했으며 더욱이 그의 철학과 사상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듣기로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저작물에서 감명과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만큼 그의 철학에도 관심이 많이 간다.

니체는 정신의 세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애라는 은유를 써서 설명합니다. 낙타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묵묵히 그 짐을 짊어집니다. 사자는 기존의 관념과 체제를 깨고 나아가는 질풍노도의 시기, 자유를 향한 발랄한 투쟁의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죄없이 순진무구한 긍정의 시기, 새로운 삶을 빚는 가능성의 단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의 첫 번째의 단계에서도 아무 불행감 없이 잘 살아갑니다. 더 높은 단계의 정신적인 성취를 바라는 사람들은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갑니다. 책을 쓰는 지식인들이 이 단계에 가장 많이 있습니다. 무수한 오류들은 집어삼키고, 시행착오와 방황, 고독한 자기 동력과 엄격한 지적인 수련을 거치면 갈 수 있는 단계이지요. 세 번째 단계에 오른 사람들은 희귀합니다. 어린애는 순진무구한 생의 명랑성,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정신의 발랄함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인용한, 니체가 말한 정신의 단계를 보니 나는 여태껏 낙타에 머물러 있었고 크게 벗어나기도 힘들겠구나하는 애매한 안타까움이 든다. 아마 이 책의 저자는 확실히 낙타의 수준은 훌쩍 넘어선 듯 하다.

 

저자는 젊은 시절 방황 이후 문필가로써의 자질과 역량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후 나이들어 시골 산골에서 적절한(?) 은둔을 하며 자급자족과 검소함을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싶은듯 하다.

저자가 인용한 프리초프 난센의 다음 글은 세속에 찌들어 지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삶의 풍요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많이 버는 것보다는 적게 쓰는 것이 더 낫다.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예가 되어야 하지만 적게 쓰고 지낼 수 있으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적게 쓰는 사람은 더 쉽게 자기 목적을 향해 매진할 수 있을 것이며, 필요한 게 많은 사람보다 대체로 더 풍요롭고 충실한 삶을 산다." - 프리초프 난센, 핸드메이드 라이프

 

책의 도입 '웃자'라는 단상 역시, 흔해빠진 것 같은 웃음이라는 의미를 새로이 하게 만든다.

웃음은 사랑과 사람 사이에 긴장으로 만들어진 뻑뻑함을 풀어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지요. 웃음은 완고한 사람을 유연하게, 편협한 사람을 원만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웃으면서 타자의 세계 속에 동화되고 공감과 연대감을 두텁게 하지요.... 사람들은 웃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중략.)

니체라는 철학자에 따르자면 웃음은 보다 높은 인간이 되려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요.

"웃고 있는 예언자 짜라투스트라, 높이뛰기와 멀리뛰기를 좋아하는 자, 나 자신이 이 왕관을 내 머리에 얹었노라! 웃는 자의 이 왕관, 장미꽃으로 엮은 이 왕관, 형제들이여 이 왕관을 그대들에게 던져주노라! 나는 웃음을 신성하다고 말하노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내게 배울지어다-웃음을."

 

공감가는 철없던(?) 그의 경험도...

한때 비극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지요. 철이 없던 시절이었지요. 행복보다는 불행에, 기쁨보다는 슬픔에, 유쾌함 보다는 우울함에 더 탐닉했지요. 웃음은 경박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과묵하고 표정은 늘 무겁고 진지했지요. 좀처럼 웃지 않았지요. 그게 멋있다고 여겼던 게 틀림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생각이 여물지 못하고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 있지요. 문학과 철학에 심취한 소년은 웃지 않기가 세상의 경박함에서 멀어지고 진지함에는 가까워지는 일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지요.

 

나는 문필가의 글 속에서 특히 책과 독서에 대한 그들이 생각을 듣고 싶어한다. 인문서적 탐독에 대한 동기와 용기를 불러다 줘서 인가 보다.

책읽기는 우선 남과 그가 일군 세계와의 만남이요 교감이지요. 제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책의 지은이와 만나는 것이지요. 만남은 대화와 소통으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동안 뜻밖에도 내면의 들뜸은 가라앉고 고독은 위로받습니다. 책을 읽으면 강박과 고독은 그 부피가 줄고 기쁨과 지혜는 커집니다. 그리하여 제 안에서 도축장인 듯 신음하고 울부짖는 가축들은 잠이 들고 제 안의 지옥들은 문을 닫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 밀려드는 벅찬 감동과 함께 세상의 무질서와 혼돈을 제압하고 이윽고 샘풀처럼 괴는 고요와 평화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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