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호 저 | 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천원 지폐에 나오는 친숙한 모습의 퇴계 이황 선생의 자성록과 그의 사상을 추려서 엮은 책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유교학자로 시대를 뛰어넘어 존경을 받을 만큼 성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학문이 높음은 단순히 지식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와 세상 이치를 깨닫는 근원적 영역까지 올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퇴계 이황이 추구하고 매진한 학문의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퇴계는 학자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금의 높은 신뢰를 받아 고관직을 수차례 거쳤지만 그는 평생 관직보다는 학문 탐구에 더 강한 애착을 보이며 관직을 사양하는 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야 가던 걸음을 멈추고 옛 성현의 글을 많이 가져다 읽었습니다. 깨달음이 컸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가던 길을 바꾸어 방향을 달리 하려고 합니다. 조정에 사직을 청해 벼슬자리를 떠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옛 서적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 미처 이루지 못한 것을 구하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하늘의 도움을 어두 차츰차츰 조금씩 쌓은 끝에 만에 하나라도 보탬을 얻는다면, 이 일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지난 10년 이래의 뜻이며 소원이었습니다. 임금의 은혜가 이 하찮은 자를 포용하시고, 헛된 명예가 사람을 몰아 붙여서 지난 10년 동안 세 번이나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세 번 모두 불려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늙고 병들어 공부에 마음을 쏟지도 못하였으니, 이러고서도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퇴계가 남명 조식에게 보낸 편지 중
높은 관직을 거친 고관대작이 은퇴 후, 녹봉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곧 가난해 진다고 하는 것은 그의 청빈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에 이르면 늘 완락재에 거처했다. 책을 좌우에 쌓아 놓고 책읽기에 몰두했다. 사색의 시간은 끝이 없었다. 밤낮으로 읽고 생각하기를 계속해 나갔다. 관직을 그만 두고 특별한 녹봉이 없었던 퇴계는, 한마디로 가난했다. 나물과 잡곡밤으로 겨우 끼니를 이으면서 뼈를 깍는 공부와 담박한 생활이라! 일반 사람이 보기에 퇴계의 삶은 위태로워 보였다.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은 염려했지만, 퇴계는 순임금이나 도연명처럼 여유롭고 웃음띤 열굴로 누구보다도 넉넉해 보였다. 인반낙도의 실천이라고나 할까! 퇴계는 자신이 추구하는 유교의 도에 더욱 근접하여 조예도 깊어졌다. 스스로 학문을 즐겼고 세상의 부귀영화나 호사스런 삶의 물정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모자라는 가운데에서도 여유가 있었고 스스로 배우고 있다는 기쁨으로 늙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듯 했다. 퇴계는 자신이 공부하던 장소, 완락재를 제목으로 성철하는 마음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경을 주로 하여 의를 모우는 공부
지나친 의지와 서두름이 없어야 점차로 꿰뚫어지네
태극의 이치를 알아낸 염계 선생의 묘한 학문
천 년이 지난 뒤에야 이 즐거움 비로소 알겠네
일하지도 않는 직책을 받아 들이지 않는 강직함과 다른 이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그의 생각은 참으로 배울만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 자리라도 더 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른 이의 기회마저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뺏는단 말인가. 과연 우리네 범인이 감히 따르지 못하고 높이 배울만 하다.
퇴계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형식적으로 관직명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즉 실제 일은 하지 않았지만 직책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조정에서 직책만을 부여하며 그를 기다렸다는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와 존경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퇴계는 이름과 살제가 부합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 관직에 나가 일을 하지 않는데 관직 이름만 빌리고 자리를 꿰고 앉아 있어서야 되겠는가? 잘 찾아보면 훌륭한 선비들도 많을 것이며 뜻을 펼쳐 성장하는 후배들도 있는데, 어찌 자신과 같은 늙은이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비움, 내려놓기 등 복잡한 현 시대에서도 여전히 강조되는 마음 수양이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은 많은 성현들이 강조하며 하는 말이다.
- 퇴계가 남시보에게 답한 편지의 별지 중
스스로 부끄러운 대목이다. "뜻이 정밀하지 못하거나... 부귀영화를 바라는데 마음을 빼앗겨...."
시대가 나의 뜻과 맞지 않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말며 쉬거나 물러날 때를 찾도록 하세요. 그리고 공부에 전념하면서 "지금은 나의 공부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조용히 몸을 닦아 정진해 나아가는 시기다."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 퇴계가 기명언에게 답한 편지 중
수신 십훈
1. 입지: 뜻을 높이 세우십시오.
성현을 목표로 하고 털끝만큼도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2. 경신: 몸가짐을 경건히 하십시오.
아홉 가지 바른 모습을 지키고 잠깐 동안이라도 방종한 태도를 보이지 마십시오
3. 치심: 마음을 바로 다스리십시오.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유지하고 흐릿하고 어지럽게 놓아두지 마십시오
4. 독서: 책을 열심히 읽으십시오.
책을 읽으면서 뜻을 깨달아야 하며 말과 문자에만 매달리지 마십시오
5. 발언: 말을 바로 하십시오.
정확하고 간결하게, 자제하고 이치에 맞게 말하여 자신과 남에게게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6. 제행: 행동을 자제하십시오.
행동을 반드시 바르고 곧게 해야 하고 도리를 잘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마십시오
7. 거가: 가정생활에 충실하십시오.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자매와 우애를 다하며 윤리를 지킴으로써 서로의 은혜와 사랑을 굳게 하십시오
8. 접인: 사람을 잘 대하십시오.
만나는 사람들을 성실과 신의로 대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들을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9. 처사: 매사를 옳게 처리하십시오.
업무에 임해서는 옳고 그름을 철저히 분석하고 쉽게 분노하지 말며 욕심을 줄이십시오
10. 응거: 편안하게 시험에 응시하십시오.
시험에 관해서는 득실을 따지지 말고 최선을 다 해서 준비하고 평안하게 치른 다음 천명을 기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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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며, 고요한 곳에서 깊이 사색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요즘 세상은 TV, 휴대폰, 자동차, 각종 주변 생활소음으로 깊이 사색할 수 있는 기본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물론 방 문을 닫고 고요해 질 수는 있겠으나 이것은 과거, 자연속의 청명한 고요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리고 자성록에 실린 퇴계의 편지들을 보면 벗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곳곳에 묻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대에는 멀리 떨어진 벗과 연락하기 위한 수단이 거의 편지 밖에 없었으며, 그 편지를 주고 받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더욱이 헤어진 후 만나기는 더 힘들었기 때문에 기약할 수 없음에 더욱 애틋했을 것이다.
요즘은 생각나면 바로 전화나 채팅, 이메일 등으로 즉시 대화를 할 수 있고 만나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 애틋함과 그리움이 거의 없어졌으니 벗에 대한 사색과 관계의 통찰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