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06.23 10:45

 

구본형 저

 

온라인 서점의 추천 책 링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된 저자의 몇 가지 저술들과 추쳔평 들...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지만 그의 저술을 접해본 적은 없었던 듯 하다. 검색을 좀 더 해보니 저자는 작년에 작고하신 것으로 나온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들며 그의 책과 그의 글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50살의 문턱앞에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회고한 자서전 같은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은 아직 접하진 못했으나 그의 가장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았나 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10년에 한번씩 이런 형태의 개인의 역사를 출간하려고 싶다고 했으나 60의 문턱앞에서 세상과 이별했으니 그의 또 다른 10년을 듣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자서전은 나이 먹어 쓴느 회고록이고, 통상 죽기 전에 한 번 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10년에 한 권씩 나의 이야기를 편찬하려 한다. 조금 일찍 깨달았다면 더 빨리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40대의 10년부터 시작하게 된 것은 공교로운 일이었다. 만일 20대나 30대부터 기록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10년후의 세계를 예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개인이 역사는 그 스스로가 기록하고 편찬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가 남겨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개인의 역사를 스스로 재 조명해봄으로으로써 미래를 올바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갸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중략)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중략)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기질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적잖이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의 기질의 많은 부분에 나의 기질을 엿볼 수 있어 그러할 것이다. 사소하게는 의자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부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는다. 약간 흔들리게만들어 놓고 편안하게 반쯤 눕듯이 앉는다. 내 의자는 꽤 좋다. 그리고 편하다. 나는 하루의 여러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의자에 약간의 돈을 투자하였다.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무척 부끄럽워했다. 나는 사람의 관계는 가능하면 순수한 것이 좋다고 신봉하는 축에 속하는 숙맥이다. 나는 이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의미와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능란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세계를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데 까다롭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특히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은 저술가, 대학교수, 예술인, 카운슬링 또는 컨설팅 등이다. 

 

 

그의 20대와 30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잘 나가는 외국계기업에서 20년을 근무한 저자는 자신의 직장 경험을 살려 변화경영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40대를 보냈다. 책의 제목과 같이 마흔세 살에 불현듯 스쳐간 생각을 시작으로 저술을 하기 시작하고 1인 기업인, 강연자, 저술가가 되었다고 한다.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파도를 높이 탔다. 나는 늘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었다. 16년 동안 변화경영 분야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얻어낸 지식과 경험과 관찰을 분류하고 정리하며 해석해보고 싶었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언젠가 책을 한 권 내는 것은 오래된 욕망이었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1997년, 마흔세 살이 되는 여름 어느 날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 달 동안 포토 단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새벽에 깨어 일어나 앉았다. 아마 배가 고파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같다. 잠이 깼지만 그대로 눠워 있었다. 날은 천천히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할 일 없이 하루를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누워 있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없었다. 하루는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었다.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즉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1994년 1월 첫날이 어떻게 밝았는지 이제는 기억할 수 없다. 그해는 내가 마흔 살이 되던 해였따. 아마 비장한 각오, 마흔이 된 체증, 알 수 없는 숫자의 압력에 눌려 침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변화는 마흔 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용혼을 덮쳐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많은 현인들이 남긴 글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저자의 의견도 일치한다.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따.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며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자신만의 하루의 일부를 소개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팁도 알려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다를 것들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잇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직장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대목에서는, 현실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정당화의 방패로 삼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스핀오프(spin off)의 대상이 되는 부서의 관리자 몇 사람을 만나 개인적인 의견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반대했다. 월급은 상대적으로 적고, 일은 많으며, 단순하고 반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비전도 기회도 적은 그 부서 사람들은 모두 다 IBM 속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들의 애환을 잘 아는 나는 왜 밖에서 작지만 독립적인 회사의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일 년에 한 번쯤 흔들의자에 앉아 마치 다 산 것처럼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글을 갈 것이니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잠을 자다가 학교에 가야 하나 보다 하고 소스라쳐 깨어났는데 아직 식구들이 다 잠들기도 전인 한밤중임을 알았을 때, 그리하여 달콤한 잠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간 것 같았는데 많은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의 아늑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 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나도 늦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나 만나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우연히 글 쓰고 강연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1인 기업가가 되었을 때, 나는 하늘을 나는 새였다.

 

그러나 내가 떠나온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확보하는 순간 과거 생활을 장점들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아무런 소속감이 없었다. 안전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어졌다. 매일 지겹도록 만나면서 미운 정 고운정이 든 동료들도 사라졌다. 내게 정규적으로 '먹이를 주던 손'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면 가야할 곳도 사라졌다. 생명보험도, 자녀교육비 지원도, 의료보험도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지출되었다.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었던가!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저자는 죽음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죽음 앞에 허망한 꿈같은 과거를 미리 되새기는 정신적 여행을 하여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으라 강조한다. 그가 이미 작고하여 이 충고는 더욱 값진 소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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