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4.02.25 18:05

 

정약용 저/박석무 역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를 모아 엮은 책으로, 18년이라는 긴 세월 유배지에서 아들, 형, 제자들에게 쓴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대학자로써의 그의 면모는,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 난 것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무엇보다도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일종의 홍익인간 정신이 뿌리깊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며, 그렇기에 그 힘들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학문을 연구하고 많은 저작물을 남기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아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모함으로 인해 죄를 받아 유배 생활을 하게 된 정약용은 편지 곳곳에 자신의 가문을 폐족이라 칭하며 두 아들에게 폐족으로서 과거시험을 통한 입신을 못하겠지만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후세에 도움이 되는 저작을 통해 학자는 되지 못하겠느냐며 많은 충고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아버지와 스승으로써의 자상함과 엄함, 선비로써의 지조와 절개, 학자로써의 깊은 사유를 갖춘 정약용을 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였으며 학문을 추구하는 방향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 등 수백년 전 현인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새벽예찬 저자의 삶에서도 그려볼 수 있는 학문과 사색, 자연이 다 함께 어우러져 불현듯 터지는 통찰에 대한 글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 있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 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가롭게 생각이 떠올라 그냥 운율이 나오고 저절로 시가 되어질 때 천지자연의 음향이 제 소리를 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경지일 것이다.

 

두 아들이 곤궁에 처한 가족을 안타깝게 여겨 성실히 돌봐주는 일가친적이 없다고 원망하는 편지를 보고는 오히려 두 아들에게 먼저 남을 위해 제대로 헌신해 왔는지를 따져 묻고 보답 받을 생각과 원망할 생각을 하지 말것을 충고한다.

뒷날 너희가 근심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한을 품지 말 것이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하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정약용에게 조정의 힘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죄를 면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겠냐는 예기에 발끈하며 엄중하게 꾸짖는다. 짧은 글이지만 그이 지조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림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때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는 경우이다. 이제 너는 내가 필천 홍의호에게 편지를 해서 항복을 빌고, 또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결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 깃을 해야겠느냐.(중략)

사람이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면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는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에 외침이 있어 난리가 터질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투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독서와 초서, 저술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가르침을 전하며...

내가 몇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무척 많은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읽어야 읽은 책의 의리(義理)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라.

..... 

 

초서(鈔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남의 책에서 간추려내야 맥락이 묘미가 있게 된다. 만약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곳이 있을 때는 별도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넣어야만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고기 그물을 쳐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게 마련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지식인이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것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관계할 바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이면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섬기고, 동년배의 사람이라도 너희는 그와 결의형제라도 맺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

 

나는 소싯적에 새해를 맞을 때 마다 꼭 일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작정을 해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때론 몇개원 못 가서 사고가 발생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두 아들에게 근면하고 검소함을 생활의 신조로 삼으라고 당부한다.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말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을 저녁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중략)

검(儉)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해도 볼품이 없어지지 않는다. (중략)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린다. 삼키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중략)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중략)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유하고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이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글자 아니고는 손을 댈 곳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

 

그리고 영암군수직을 맡은 제자에게 자리보전에 연연해 하지 말고 올바는 관리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

상관이 엄한 말로 나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리가 조작한 비방으로써 나를 겁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상이 부탁으로써 나를 더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릇 봉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지 않는 자는 하루도 수령의 지위에 앉아 있으면 안된다. 흉년에 백성들의 조세를 면제해줄 것을 요구하다가 상관이 들어주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가며, 상사가 요구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거절했으나 알아듣지 못하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가며, 나의 예모에 손상이 생기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간다. (중략) 만약 조마조마하고 부들부들 떨기를 구슬을 품은 자가 힘센 사람을 만난 것처럼 하여 오로지 빼앗길까 두려워한다면, 역시 그 지위를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긴 유배생활에 몸이 상하고 기력이 쇠하여 이런저런 병이 들고서도 독서와 저술활동을 그치지 않은 대학자로써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구절을 발췌해 본다.

점차로 하던 일을 거둬들여 정리하고 이제는 마음공부에 힘쓰고 싶은데 더구나 풍병은 이미 뿌리가 깊어졌고 입가에는 항상 침이 흐르고 왼쪽 다리는 늘 마비증세를 느끼고 머리 위에는 언제나 두미협 얼음 위에서 잉어 낚는 늙은이의 솜털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또 혀가 굳어져 말이 어긋나 스스로 살 날이 길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결같이 바깥일에만 마음이 치달리니, 이는 주자께서도 만년에 뉘우쳤던 바였습니다.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고 보면 세간의 잡념이 천갈래 만갈래로 어지럽게 일어나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 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것을 도로 느낍니다. 이 때문에 문득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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