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인생론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3.10.23 23:31

 

쇼펜하우어 저/박현석 역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 봄직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그의 역작을 접한건 이 책이 처음이지만 감명의 깊이는 자연스레 책을 두 번 읽도록 만들었으며 중간중간의 사색을 동반한, 오랜만에 제대로된 독서를 한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그의 책을 모두 섭렵하고 싶다는 욕구마저 생겼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60세가 넘어 저술한 '수필과 이삭줍기'에 실려 있는 '처세술 잠언' 부분으로 다음과 같이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인간을 이루는 세 가지 근본 규정 /       2장,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3장, 인간의 소유물에 대하여             /       4장, 사람이 주는 인상에 대하여

5장, 훈화와 금언                             /       6장, 연령의 차이에 대하여

 

책을 시작하며,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인생의 기초를 이루는 인간의 근본 요소로 규정한다.

 

인간의 모습 / 인간의 소유물 /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즉, 타인의 평판)

 

여기서 제일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첫 번째로 언급한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의 모습이란 인품, 인격, 인물. 여기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지성 등 넓은 의미의 인간 그 스스로가 가진 모습의 총칭이다. 이런 인간의 모습이야 말로, 단지 인간이 설정해놓았을 뿐인 규정인 다른 두 가지에 비해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며 근본적인 것으로 인생과 행복의 가장 큰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음의 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인용되고 있다.

"틀림없이 자연(인간의 자연성도 포함)은 의지할 만하지만 자산은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스스로가 가진 여러가지 주관적인 재산 중, 명랑함을 제1의 행복의 원천이라 말한다.

이러한 모든 재산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마음의 명랑함이다. 왜냐하면 명랑함은 다른 무엇을 기다릴 것도 없이 그 자체의 장점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랑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명랑하게 지낼 수 있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란 다름 아닌 그가 명랑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어떠한 재산도 완전히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보다 뛰어난 장점은 없다. 그리고 성질 그 자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젊고 미남인 데다가 부자로 세상의 존경을 받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이 남자가 행복한지를 판단하려면 그 외에도 그가 명량한 사람인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반대로 이 사람이 명랑한 사람이라면, 젊은지 나이를 먹었는지, 몸이 곧게 펴져 있는지 꼽추인지, 가난한지 부자인지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남자는 말할 것도 없이 행복할 것이다. (중략) 현재에 직접적으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명랑함 이외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명랑함만이 행복의 참된 실체, 행복의 진짜 화폐이지 다른 것들처럼 불완전한 어음은 아닌 것이다. (중략) 이러한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이 재산의 획득과 증진을 위한 노력을 다른 어떠한 노력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명랑함을 증진하고 유지시키는 데 건강만큼 유익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높은 수준의 완전한 건강을 얻고 거기서부터 명랑함이 꽃처럼 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상식에서 벗어난 마구잡이 행동이나, 격렬하고 불쾌한 감정의 발동, 극단적이고 지속적인 정신의 긴장 등은 일체 피하고, 매일 두 시간식 실외에서 활발한 운동을 하고 냉수욕을 자주 하는 등 건강 관라에 힘써야 한다. 나날이 적당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중략) 우리의 행복이 명랑한 기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명랑한 기분이 건강 상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는 외부적 사정이 좋거나 몸이 건강하고 원기왕성한 날과 병으로 마츰이 초조하고 차분하지 못한 날의 인상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의 객관적,현실적 모습이 우리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받아들이는 모습, 우리의 마음에 비친 사룸의 모습이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익난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의견이다."라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봐서 행복의 90퍼센트까지는 건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든 것이 향락의 원천이 된다. 이에 반해 건강하지 못하면 그 어떤 외부적 재산도 즐길 수 없게 된다. 그 외의 주관적인 재산, 즉 정신과 정도, 기질 등에 갖춰져 있는 특성조차도 육체적 나약함 때문에 저조해져서 눈에 띄게 위축되어버린다. ... 따라서 어리석은 행동 중 으뜸은 무엇을 위해서든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 눈앞의 이득, 출세, 학문, 명예, 나아가 음탕하고 찰나적인 향락 중 그 어느 것을 위해서든 건강을 희생하는 일이다. 건강보다는 오히려 다른 모든 것들을 가볍게 봐야 한다.

 

이에 반해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2대 적수로 고통과 무료함을 들고 있다.

 

고통 <-----------------------------> 무료함

 

이 두가지는 상호 배타적으로 어느 한쪽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곧 어느 한쪽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보며,

이 두 적수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현실적인 인간들의 생활이라고 말한다.

 

"외면적으로는 가난과 결핍이 고통을 만들고, 반대로 안전과 여유가 무료함을 만든다. 따라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고통과 끊임없이 싸우며 부귀한 계층의 사람들은 무료함을 적으로 끊임없는, 때로는 절망적이기까지 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문명의 최저 단계인 유랑 생활이 문명의 최고 혜택으로 보이는 세계일주를 통해 재현되고 있다. 유랑 생활은 가난 때문에, 세계일주는 무료함 때문에 생겨났다."

 

또한 무료함으로 인한 내적 공허감을 채우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욕구 충족 방법이 있는데 쇼펜하우어는 우수한 내면/정신의 부를 쌓는 것에 궁극의 가치를 두고 있다. 또한 정신의 부를 추구하는 뛰어난 사람들은 오히려 고독을 즐기며 비사교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이 선택하는 오락의 저급함, 그들의 품위 없는 사교와 대화, 그리고 예의 호기심 가득찬 구경꾼들이 가장 큰 증거이다. 주로 이 내명의 공허에서 발생하는 것이 온잦 종류의 사교와 오락, 여흥, 사치를 추구하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낭비를 하며, 곧 빈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빈곤을 가장 안전하게 방지하는 길은 내면의 부, 정신의 부를 쌓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의 부는, 그것이 우수함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료함이 만연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퍼올려도 마를 줄 모르는 사상의 활발한 움직임, 내면세계, 외면세계의 각기 다른 여러 현상에 접하며 끊임없이 새로이 솟아오르는 사상의 유동, 시시각각으로 다른 사상의 결합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이것을 말들어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충동들 때문에, 긴장이 이완된 몇 차례의 찰나와도 같은 순간을 제외하면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은 전혀 무료함을 느낄 새가 없다.

(중략)

재능과 지혜가 풍부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고통이 없도록, 상처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시간의 여유와 안정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하고 은근한, 그리고 유혹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이른바 세상 사람들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게된 뒤부터는 오히려 은둔과 한거를 즐기고 특히 정신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차라리 고독을 선택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근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크면 클수록 필요로 하는 외부의 것은 그만큼 적어지게 되며 자신 이외의 인간에는 그만큼 무게를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이 뛰어나면 그만큼 비사교적이이다. 그렇다. 사교의 질이 사교의 양으로 메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화려한 사교계로 나가서 사는 것도 보람이 있는 일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리석은 자 백 명이 현자 한 명에 미치지 못한다.

(중략)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자면 정신적으로 빈약하고 무슨 일에 있어서나 열등한 사람일수록 그만큼 사교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고독과 공동 생활, 이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외에는 달리 삶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사교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는데, 사람들끼리 어울리다보면 어쩔수 없이 적당한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게 되며, 그럼에도 상처와 충돌을 피할 수 없으며 또한 높은 정신적 활동을 추구하기 위한 사색과 여유를 빼앗기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저급한 사교 활동에 환멸을 느끼고 고독을 즐기게 된다고 한다. 어찌보면 후세의 그에 대한 평가처럼 염세주의적 시각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이 말에는 적잖은 공감이 동반될 수 밖에 없으며, 쇼펜하우어가 아닌 동/서양의 뛰어난 많은 위인들도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유로운 여가에 자아을 살피고 사색과 성찰을 통한 높은 사상의 결합을 만들어내기를 권한다.

저급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지능이 생각을 움직이는 동기의 매개체 역할 이상으로는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별히 취할 만한 아무런 동기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 의지는 휴식을 취하며 지능은 완전 휴업 상태에 들어간다. 지능이 휴업 상태에 있다는 것은 지능이라는 것이 의사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으로는 활동을 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몸과 마음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체되어 버린다. 바로 무료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무료함에 대처하기 위해 매우 일시적이며 임의로 취한 하찮은 동기를 의지에게 강요하여 의지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서 지능이 이 동기를 취하도록 하여 지능이 활동을 개시하도록 한다. ... 이러한 동기가 되는 것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카드놀이 등이다. 이런 놀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저급한 뒤노를 가진 인간은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취하여 미친 듯이 떠들며 그 시간을 모면하는 것이다. 담배 등도 그러한 인간에게는 사상을 대신할 수 있는 절호의 물건이다. 이렇게 해서 그 어느 나라에서나 사교계의 주요한 일은 카드놀이가 되어버렸다.

(중략)

그들은 서로 교환할 만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카드를 교환하면서 상대의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비참한 무리들인가?

(중략)

이렇게 열 명 중 아홉 명은 자유로운 여가 때문에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는 인간,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독한 무료함 때문에 고민하는 무리로 변해버리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유로운 여가가 있어야만 인간은 자신의 자아를 움켜쥘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자유로운 여가는 각 인간 생활의 개화, 아니 결실이며 따라서 그러한 때에 진실된 무엇인가를 구비한다면 행복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논지의 흐름이 계속 반복되는 가운데, 사람마다 추구하는 행복의 수단을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해 놓은 대목이다.

 

먼저 평범한 인간이 의존하는 행복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평범한 인간들은 특히 인생의 향락에 관해서는 자기 외부에 있는 사물에 의존한다. 재산이나 지위에 의존하며 가족,친구,사교계 등에 의존한다.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그가 느기는 인생의 행복이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잃거나, 이러한 것들에 환멸감을 느끼게 되면 인생의 행복은 무너져버리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중심은 그의 외부에 있다는 말로 이 관계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은 끊임없이 동요하며 변덕스러운 것이다. 재력이 허용하는 한, 별장을 사거나 향연을 베풀거나 여행을 하는 등 굉장한 사치를 하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외부로부터의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건강과 체력의 참된 원천이 자기 자신의 활력에 있음에도 쇠약한 인간이 야채즙이나 약제 등으로 건강과 체력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음으로 평범함 보다 조금 나은 인간이다.

"이야기를 또 다른 극단으로 몰고 가기 전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인간과 비교해서 정신적인 능력이 그다지 우수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조금 나은 인간들을 등장시켜보기로 하자.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가령 취미로 미술을 공부하거나, 식물학, 광물학, 물리학, 천문학, 역사학 등과 같은 실천적인 학문을 연구하여 자기 향략의 많은 부분을 이곳에서 발견하고 앞서 기술한 외부적인 원천이 말라버리거나, 그러한 원천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게 되면 미술이나 학문 등에서 편안함을 얻으며 원기를 회복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중심은 부분적으로 그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실천적인 학문은 상호간의 실용적인 관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일개 인간으로서 그러한 것들 속에 완전히 잠기지 못하며,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그것에 몰두할 수도 없고 따라서 그것 이외의 일에는 전혀 흥미를 갖지 못할 정도로 생활이 그 일과 융햡될 리도 없다"

 

마지막으로 쇼펜하우어가 바라마지 않는 천재적인 인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정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통상 천재라고 불리는, 정신적으로 탁월함의 극치에 있는 사람들뿐이다. 정신적인 탁월함의 극치에 있어야만 비로소 사룸의 존재와 본질을 전반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테마로 취하고 그런 후에 그것에 대하여 철저한 해석을 자신의 개성적인 경향에 따라서 예술이나 문학이나 철학을 통해서 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천재적인 인간들은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기의 사상과 작품을 일로 삼는 것이 간절한 욕구가 되어 고독을 환영하고, 자유로운 여가를 더할 나위 없는 재산으로 여기며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필요 없는 것, 있으면 오히려 귀찮은 일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이야말로 중심이 완전히 자기 자신 내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극히 보기 드문 이런 부류의 인간은 비록 매우 선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친구, 가족, 사회에 대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것과 같은 한없이 절실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기만 하면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남들보다 한층 더 고독한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그들은 결국 타인에게서는 결코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을 자신과 완전히 동등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를 보더라도 언제나 자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가서도 자신만은 이질적인 존재로서 행동하며 타인을 머릿속에 떠올리 때도 일인칭 복수인 '우리'가 아니라 삼인칭 복수인 '그들'로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배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고립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2장,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장의 마지막 부분에 속물이라고 부르는 부류에 대한 그들의 향락을 기술한다.

(여기서 '속물'이라는 표현은 쇼펜하우어가 언급한 독일어 '필리스텔(지성의 능력이 완전히, 혹은 정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욕망을 갖지 않은 인간)'을 한국어로 의역한 것이다.)

속물 나름대로의 허영심에 대한 향락이 있다. 부나 지위, 권세, 위력 등으로 타인을 능가하여 그것으로 타인의 존경심을 사려는 허영심이 있는가 하면, 하다 못해 같은 속물들 중에서도 걸출한 사람과 사귀어 호랑이 위세를 빌린 여우와 같은 기분에 잠겨보려는 허용심도 있다. (중략)

따라서 타인에 대한 요구 중에도 정신적인 능력에 중점을 둔 요구가 포함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아니, 오히려 정신적인 능력을 보이게 되면 혐오감, 심지어는 증오감마저도 느기게 될 정도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는 단지 참을 수 없는 열등감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은연중에 잠재의식적인 질투심을 느끼게 되는데 가능한 한 그것을 억눌러 오직 숨기려고만 들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질투심이 더욱 커져서 때로는 무언의 원망이 되는 경우조차 있기 때문이다. (중략)

부와 권세야말로 유일하고 참된 미덕이라고 보고 자신도 그 점에 있어서 걸출하게 보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인물 평가나 존경심도 오직 부나 권세에 의해서만 평가하려고 한다.

 

이어지는 '3장, 인간의 소유물에 대하여'는 다른 장에 비해 내용이 가장 짧다. 먼저 등장하는 관심있는 글은, 원래 궁핍한 사람은 부를 이루더라도 가난에 대한 내성이 있어 쉽게 계획없이 낭비하게 되고 원래 부유했던 사람은 계획적인 경제활동을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자면, 글자 그대로 고생, 결핍과 싸워온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고생과 결핍을 남의 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이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훨씬 적기 때문에 낭비하는 경향이 남들보다 강하게 마련이다. 어떤 행운에 의해서, 혹은 어떤 종류이든 관계없이 특수한 재능에 의해서 비교적 급속하게 빈곤에서 벗어나 부유해진 사람들은 모두 전자에 속하며, 이에 반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한 채로 살아온 사람은 후자에 속한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미래를 생각하며 따라서 경제활동에 능숙하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보더라도 곤궁함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자 이유는 오히려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은 부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부는 없어서는 안 될 것, 유일하게 활용 가능한 생활 요소, 이른바 공기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처럼 그 부를 지키며, 따라서 대체로 정돈하기를 좋아하고 세심하며 검소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빈곤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따라서 후에 어떤 계기로 부가 굴러들어오게 되어도 그것은 덤과 같은 것, 오로지 향락과 방탕을 위한 것으로 여겨버리기 때문에 그 부가 없어지게 되면 그것으로 그만, 다시 예전처럼 생활하며 오히려 걱정거리가 하나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여긴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 책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했던 몇 안되는 부분이다. 대체로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사람이 저축도 더 많이 하고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반면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느껴왔는데, 이것은 정 반대의 논리라 당황스러웠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글에서 말하는 '획득한 부'는 작은 돈을 차곡차곡 쌓은 부가 아니라 갑자기 굴러들어온 비교적 큰 규모의 부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가 되었다. 실제로 큰 돈을 만져 보지 못한 사람이 복권이든, 주식이든, 돈 많은 양반이랑 결혼해서 얻든, 일확천금을 얻게 되면 쉽게 탕진해 버리는 숱한 예를 보면 글이 주고자 하는 바를 납득할 수 있다.

태생이 가난했던 부인이 거액의 지참금을 가지고 온 부인보다 화려하고 낭비벽이 심한 경우를 곧잘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위에서 설명한 인간의 근본적인 성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대부분의 경우 부잣집 딸은 단지 재산을 지참해올 뿐만 아니라 가난한 집 딸에 비해서 재신을 유지하려는 열의, 아니 재산을 유지해야겠따는 본능적인 천성까지도 지참해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려는 사람은 아리오스토의 일곱 가지 풍자 중 첫 번째 풍자를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서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 존슨 박사는 내 의견에 찬성하여 "재산이 있는 여자는 금전의 사용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려 깊게 사용한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야 비로서 금전적으로 자유로워진 여자는 돈을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매우 대담하게 덥썩덥썩 써 버린다." 고 말했다. 어쨌든 가난한 여자와 결혼하려는 사람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아내에게는 자본을 물려주지 말고 이윤만을 물려줄 것, 특히 아이들의 재산이 아내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처치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4장, 사람이 주는 인상에 대하여'에서는 인간 본성이 가진 특수한 나약함으로 인해 행복에 있어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 타인의 평가가 오히려 과대한 영향을 주는 것을 지적하며 고양이에 빗대어 평가받는사람의 보편적 반응을 기술하고 있다.

고양이는 쓰다듬어주면 반드시 목에서 소리를 내는데 인간도 또한 자신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분야에서 남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면 그것이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밝아진다. 실제로는 불행하다 하더라도, 혹은 지금까지 논의해온 행복의 두 가지 커다란 원천이 제아무리 불안정하더라도 타인이 찬동하고 갈채를 보내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으면 그것으로 위안을 얻는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의미로든 어떤 정도로든 어떤 관계에서든 가령 자신의 공명심에 상처를 받거나, 가볍게 여겨지거나, 홀대를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게 되면 모욕감을 느끼며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 일도 흔히 볼 수 있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략)

그리고 인간은 시종일관 타인의 의견, 타인의 마음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행복의 본질적 기초는 인간 자체의 자연성에 있음에도 '세상의 소문'에 노예가 되는 일반적인 형태를 꼬집는다.

일반적으로 봐서 우리 인간의 본질의 기초, 즉 행복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의 동물적인 자연성이다. 따라서 우리의 복지에 있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며, 건강 다음으로는 생존을 유지하는 수단이 중요하다. 즉 정신적으로 피로하지 않은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예나 영광, 지위, 명성 등은 그것을 제아무리 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본질적이고 중요한 재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며, 또한 이를 보완해주지도 못한다. 오히려 본질적인 재산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런 것들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 각자는 결국 현실적으로는 이른바 자신의 피부를 감싸여 실아가고 있는 것이지 타인의 생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즉 건강이나 기질, 능력, 수입, 가족, 지인, 주거 등에 의해서 규정되는 우리의 현실적/개인적인 상태가, 어떻게 해야 자신이 타인의 마음에 들까 하는 문제보다도 우리의 행복에 몇 배나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매우 간단한 깨달음을 빨리 얻는 편이 몸의 행복을 위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것과 정반대가 되는 미망은 사람을 불행에 빠지게 한다. "생명보다도 귀중한 것은 명예다." 라는 말을 곧잘 들을 수 있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생활이나 무사식재 등과 같은 것은 가치 없는 것이다. 우리에 대한 타인의 생각이 더욱 커다란 문제이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세상에 나아가 생활을 유지하고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명예, 즉 우리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꼭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평범한 진리에 바탕을 둔 과장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이에 반해서 인간이 평생 쉴 틈도 없이 노력해서 수많은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추구하는 것은 대부분 타인에게 좋은 생각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관직이나 칭호, 공훈 등은 물론 부, 학문(네가 알고 있는 것은 네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도 또한 알고 있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예술조차 가만히 따져보면 대부분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추구되며, 타인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존경받으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실상을 알게 되면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어리석음은 더욱 자명해질 뿐이다. (중략)

이러한 영향을 따라가다보면, 이른바 '세상의 소문'에 노예가 되어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

 

타인의 평가에 기대는 습성인 명예욕에 대한 일침과,

 

"왜냐하면 명예욕이란 워낙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불합리성이기 때문이다. '명예욕은 현자조차도 포기하기 가장 힘든 것이다.'라고 타키투스는 말했다. 인간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을 탈피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유일한 수단은 이 어리석음을 확실하게 어리석음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명예욕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삶을 권고한다. 이 글을 보니 가끔 케이블 TV에서 보는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여기서 언급한 '은둔하는 생활'의 극단적인 본보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 권고하는 삶의 실천이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타인의 의견이 대부분 우리에게 미치는 현실적인 영향이 얼마나 적은 것인지, 또한 일반적으로 타인의 의견은 대부분 매우 해로우며 타인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하나하나 귀담아듣거나 자신에 대해서 어떤 음색, 어떤 말투로 이야기하는가를 신경쓴다면 그것이야말로 화병에 걸리는 지름길이라는 사실, 그리고 명예라는 것도 결국 간접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 직접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 등을 알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에서 심기일전하여 탈피할 수 있다면 마음의 안정과 명랑함이 놀랄 만큼 강해져서 한층 더 확고하고 자신 있는 태도를 취하게 되며, 행동 또한 대체로 더욱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은둔하는 생활이 마음의 안정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대게 이런 생활을 하면 언제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아가면서 타인의 생각에 끊임없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져서 자신에게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완전히 관념적인 노력을 넘어 구제하기 어려운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지질 끌려다니는 수많은 현실적인 불행에서도 벗어나게 되며 그만큼 남의 눈치를 보는 데 쓰던 힘을 자신만의 고유한 재산을 쌓는 데 기울일 여지도 생기며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견실한 재산을 즐기는 일을 방해받게 되는 일도 적어지게 된다. 하지만 흔히 말하듯 고상한 일은 실행하기 힘들다."

 

쇼펜하우어는 몇 가지 기준의 명예를 나누어 설명하면서 성생활 상의 명예, 그 중 여성의 명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론을 전개한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꽤나 불편한 논리일 수 있다. 아마도 쇼펜하우어가 살았던 시대와 현시대의 시간적 거리감이 이 논리의 불편함을 가중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편 여성의 명예란, 미혼 여성의 경우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세상의 생각을 말하며, 기혼 여성의 경우는 자신에게 맡겨진 남성에게만 몸을 허락했을 것이라는 세상의 생각을 말한다. 이러한 세상의 생각의 중요성은 어떤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지금부터 논해보겠다. 여성은 남성에게 온작 일들, 다시 말해 여성이 염원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사물을 요구하고 기대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당장 직접적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을 요구할 뿐이다. 따라서 남성은 여러 가지로 돌볼 의무를 받아들이고, 거기다 결혼을 통해서 얻게 되는 아이들까지도 돌봐야만 비로소 한 가지를 여성으로부터 받게 되는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여성 전체에 대한 복지가 이 제도에 걸려 있다. 이 제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여성이 단결하여 조합 기질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여성 전체가 단일체로 긴밀한 대오를 형성하여 공동의 적으로서의 모든 남성에 대항하게 된다. 여성보다 뛰어난 심신 능력에 의해 자연스레 모든 지상의 재산을 장악하고 있는 남성을 정복하고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힘을 통해서 지상의 재산을 장악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목적을 위해서는 남성이 결혼 외의 동침을 절대로 바랄 수 없는 장치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여성들의 명예의 원리가 된다. 그것은 모든 남자가 일종의 항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고 그것에 의해서 모든 여성이 보호받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서 기술한 원리를 엄중하게 지키는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은 하나가 되어 글자 그대로의 조합 기질로 전 조합원 사이에서 이 원리가 유지되도록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미혼 여성이 혼전 성관계로 모든 여성을 배반하는 경우, 이런 행위가 일반적인 경향이 되어버리면 여성 전체의 복지가 파괴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여자를 모든 여성의 조합에서 추방하고 파렴치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여자는 명예를 잃게 된다. 여성이라면 그 누구도 그 여자와 사귀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페스트 환자처럼 기피하게 된다. 간통을 한 여자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간부는 남편이 승낙한 항복 조건을 지키지 않은 것이며 모든 여성들의 복지가 이러한 항복 위에 세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가 일어난다면 남성은 그것에 두려움을 느껴 항복을 승낙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간부는 그 행위가 중대한 계약 파기이며 사기이기 때문에 성행활 상의 명예를 잃음과 동시에 시민적 명예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혼 여성의 경우에는 변호의 마음을 담아서 '타락한 딸'이라는 말을 하지만 간부의 경우에는 '타락한 여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타락한 딸'이라면 유횩한 남자가 결혼해주기만 한다면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되지만 간부가 남편과 이별한 뒤에 간통한 남자가 간통한 여자와 결혼을 해도 그 명예를 회복시킬 수는 없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처세에 관한 견해와 충고를 담고 있다. 먼저 자신의 일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해 볼 필요성을 언급한다.

나그네가 언덕 위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걸어왔던 구불구불한 길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이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생애의 어떤 시기의 마지막에는, 그리고 전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남긴 선행이나 업적, 역작의 종합적인 참된 관계, 그 세밀한 일관성이나 맥락, 나아가 그 가치조차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직접 일에 관여하고 있을 동안에는 언제나 자기 성격의 변하지 않는 특성에 따라, 동기가 주어지는 대로, 능력의 정도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모두가 필연성에 의해서 행해지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매순간마다 그저 그 순간에 타당하고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실행하는 것 일 뿐이다. 결과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전체의 관련성을 되돌아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어떻게 행해졌으며, 무엇에 의해서 행해졌는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또한 그래야만 우리는 제아무리 뛰어난 선행, 불멸의 역작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수행하거나 제작하는 동안에는 이것이 뛰어난 선행, 불멸의 역작이라고 의식하지 못하고, 단지 현재의 목적에 합당한 것, 눈팡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 따라서 지금의 시대에 타당한 것이라고만 의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전체의 종합적인 관련을 봐야만 비로소 자신의 성격과 능력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된 뒤에 개별적인 점들을 바라보면 수많은 사악한 길에서부터 마치 영감에 이끌리듯이 자기 자신의 본질에 이끌려서 유일하게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현인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지금 이순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음 편하고 명랑한 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제대로 맛보지도 즐거움을 얻지도 못한 채 불쾌한 얼굴로 지내 버리다가 나중에 괴로운 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동경하며 덧없이 긴 탄식만을 내뱉을 뿐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지금 차갑게 보내고 있는 현재, 한시라도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며 초조하게 뒤에서 떠밀어서라도 쫓아내버리고 싶은 이 현재가 만약 조금이라도 견딜 만한 정도의 것이라면 비록 평범하고 일상적인 현재라 할지라도 그것은 저 신비한 과거 속으로 지금 막 옮겨가려고 하는 것으로 신비한 과거 속으로 편입된 뒤에는 영원불멸한 광명에 싸여 끝없이 기억에 남아서, 후일 특히 고난에 빠져서 기억이 그 돛을 올렸을 때 절실한 동경의 대상이 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두고 이 현재에 경의를 표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고독을 침해하는 사교계를 다시 한번 언급하고 있다.

자기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홀로 있을 때뿐이다. 따라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홀로 있을 때만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릇 사교에 있어서 강제라는 것은 언제나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교는 희생을 요구하는데 개성이 강하면 그만큼 희생이 커진다. 따라서 인간은 각자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가치에 정확하게 비례하여 고독을 피하거나, 고독에 견디거나, 고독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독에 빠졌을 때 비참한 인간은 그 비참함을, 위대한 인간은 그 위대함을, 즉 각자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 그대로의 천성의 등급을 나타내는 표에서 우위에 서게 될수록 그만큼 고독해진다. 그것도 본질적으로 불가피한 고독인 것이다. (중략)

또 도덕적인 면이나 지적인 면에서 인간은 저마다 자연 그대로의 천성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사교계는 이러한 차이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한 지위에 세워놓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차이 대신에 인위적으로 신분과 지위에 차별과 단계를 설정해두었다. 그것이 자연 그대로의 천성의 등급을 나타내는 표와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를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다. 이 배열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천성에서 하위에 놓여 있던 자가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천성에 높은 위치에 놓여 있던 소수의 사람들이 경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사교계에서 물러나며, 어떤 사교계에서도 사람 수가 늘어나면 곧 저열함이 우세하게 되는 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베르나르댕 드 생 피에르의 "식사의 절제는 우리들에게 육체적 건강을 주며, 우호의 절제는 정신의 평온을 준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보충한다.

 

그리고 하루가 일생이라는 비유를 하며 청춘 시간대에 해당하는 아침의 유용함을 중요시 하라고 일러준다.

아침은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일을 하기에도, 육체적인 일을 하기에도, 그 어떤 일을 하기에도 적합한 시간이다. 하루 중 아침은 청춘 시간대에 해당하며 모든 것이 명랑하고 상쾌하며 경쾌하다. 의욕에 넘치는 기분으로 모든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할 수가 있다. 늦잠으로 아침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나 잡담으로 낭비하지 말고, 아침은 인생의 정수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것을 신성시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밤은 하루 중의 만년에 해당한다. 밤이 되면 무기력하고 말이 많아지며 경솔해진다. 하루하루가 조그만 일생인 것이다. 나날이 기상이 조그만 출생, 매일 아침의 상쾌한 시간이 조그만 청춘, 매일 저녁 침상에 누워 잠드는 것이 조그만 죽음인 것이다.

 

명랑하고 상쾌한 기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아침이 중요하며 비단 시간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다양한 요인들도 이런 기분에 영향을 주기에 이 기분을 망치지 않도록 할 것을 괴테의 말을 인용해 강조하고 있다.

 

"상쾌한 기분에 이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 마음을 다해서 붙답으라. - 괴테"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숙취로 인한 불쾌한 아침이 점점 싫어지던 차에 이 글을 보니 스스로가 민망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시할 글은 호의에 대한 충고이다. 글을 보며 씁쓸한 기분을 지울수 없었다. 이 글을 보며 예전에 봤던 영화의 대사("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가 생각 났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그러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진심어린 호의라면 그 호의에 감사하며 더 높은 호의로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원칙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봐왔기에 쇼펜하우어의 다음 글은 시대를 거슬려 진실에 가까운게 아닌가 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반성적으로 되물어 볼 일일 것이다.

오냐, 오냐 하면 머리 꼭대기가지 기어오른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두 어린아이와 같다. 따라서 타인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해도 안 되고, 너무 부드러워서도 안 된다. 돈을 꿔 달라는 청을 거절한 것 때문에 친구를 잃게 되는 경우는 없지만 돈을 꿔주면 오히려 친구를 잃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소간은 소홀히 대하는 의연한 태도를 취해도 그리 쉽게 친구를 잃게 되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친절하게 신경을 쓰면 상대가 오만해져서 견딜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그 결과 친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이야말로 상대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런 생각의 결과로 오만해지고, 건방져지게 된다. 자신과 같은 사람과 잘 사귀고, 때때로 말을 하고, 속내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 자신이 상대에게 필요한 인간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되면 바로 자신이 하는 행동을 상대가 참아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예의의 범위를 넓히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어느 정도 친밀한 교제를 나눌 상대로 삼기에 합당한 사람은 매우 드물며 특히 자신을 낮춰서 저급한 인물과 교제를 갖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그 사람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게 된다면 상대는 바로 내게 무엇인가를 빼앗긴 것과 같은 기분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복수로써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교제에 있어서의 우월함은 무엇보다도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 그것도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낸다고 하는 점에서 생겨난다.따라서 상대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러한 상태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사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게 해주는 것은 현명한 처사이다. 그렇게 하면 우정은 더욱 굳건해진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가끔 보여줘도 아무런 지장도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는 그러는 만큼 더 그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이다. "타인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는 타인들로부터 중히 여김을 받는다."라는 적절한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사실을 매우 가치가 있는 경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한 사실을 마치 범죄와도 같이 숨겨둘 필요가 있다. 물론 썩 마음 내키는 일은 아지미나 이것은 엄연한 진리이다. 개도 너무 다정하게 대하면 좀처럼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대는 인간이다.

 

이것으로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 대한 독서감상문을 마친다. 염세주의 철학자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면이 군데군데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깊은 철학적 고찰에 의해 파생된 높은 통찰력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되었으며,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보편적 진리)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면, 불편한 진실에 가까운 것들도 여실히 드러내어 인생과 행복을 위한 실제적 충고가 오히려 매우 감동적으로 와닿는 책이라 평하고 싶다.

 

여기서, 나름대로 본문의 몇 개의 구문을 발췌했지만, 이것은 그야 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의 진가를 알려면 전체 글을 찬찬히 감상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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