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인간(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3.07.28 09:10

 

 

정병설 저 | 문학동네

 

부 제목과 같이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의 행동과 본심 그리고 당시 정황등을 다양한 실증적 사료들의 체계적 분석으로 풀어 나가고 있다.

 

사실 사도세자와 관련된 책은, 이 책 이전에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먼저 읽은 적이 있다.

대략 1년도 더 전에 잃었던 것 같은데, 그 책에서는 사도세자는 미쳤다기 보다는 당쟁의 억울한 피해자이고 혜경궁이 저술한 한중록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한 노론 핵심 인물의 집안이었던 혜경궁이 자신의 집안을 변명하기 위해 불순한 의도로 저술한 믿지 못할 자료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보며 사도세자의 죽음 이면에 알지 못했던 추악한(?) 정황에 화가날 정도였는데 다시 보게된 사도세자를 다룬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은 이런 생각을 다시 뒤집게 만들어 놓는다.

 

이 책은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비판하며 그 책에서 풀고 있는 사도세자와 당시 정황에 대한 논리를 철저히 부정하고 나선다. 두 책 저자의 공방은 수년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책에서는 특별히 부록으로 이덕일의 반박과 그의 저서 '사도세자의 고백'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을 별도로 할애하고 있다.

 

책의 저자 정병설의 비판 글을 잠시 보자.

 

"그런데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아쉽게도 '사도세자의 고백'은 사실에 기초한 역사서라고 할 수 없다. 허구의 수준은 거의 소설에 가까우며, 그 소설적 논리는 소설이 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 글에서는 내가 왜 이 책에 이 같은 혹평을 내릴 수 밖에 없는지를 상술할 것이다. 물론 내가 지적한 것 가운데는 잘못 본 것도 있을 수 있다. 이덕일이 실수한 것처럼 나 역시 실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이 책을 비판하는 까닭은 책의 오류가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 전체가 잘못된 논리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된 논거도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핵심 논리 비판, 한종록 비판에 대한 비판, 원문 뒤집어 읽기, 공상의 역사, 이덕일에 대한 종전의 비판, 이덕일의 반박에 대한 비판 등으로 조목조목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며 사도세자의 친부(영조)와 처(혜경궁), 친자(정조)의 행동과 속마음 그리고 당시의 정황, 역사적 배경 등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되는 좋은 계기를 얻었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다룬 두 책의 논리와 저자의 상호 비판이 나 같은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일이지만 이 역시 자료와 인과관계, 그에대한 해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으로 이해한다. 다만 일반 대중을 위해 역사 전문가,지식인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보다 사실에 가까운 역사을 알려 주길 바란다.

 

영조실록에는 열다섯 살 대리청정 이후에 세자에게 병이 생겼다고 했다. 한중록 또한 언제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리청정 이후 "병환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혜경궁은 그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할 무렵 복잡한 일이 많았는데, 당론을 앞세우는 문제 등 민감하거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세자가 거의 부왕에게 물었다. 그러면 영조는 "그만한 일을 혼자 결단치 못하여 내개 번거롭게 취품(윗사람에게 묻는 일)하니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 꾸중했고, 그래서 이런 일을 묻지 않으면 "그런 일을 어이 내게 취품치 않고 스스로 결정하리"하며 나무랐다. 사도세자의 처신이 몹시 어려웠던 것이다.

 

세자는 원래부터 술을 마시지 못했다. 사도세자의 문집 '능허관만고' 제 1권에는 "나는 원래 술을 마시지 못한다. 마침 후원의 녹음이 좋아 좌우에게 술을 주어 마시고 읊조리게 하고 그 광경을 적었다"고 부기한 시가 있다. 사도세자가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은 본인은 물론 혜경국이나 정조도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억울하게 의심을 받자 이때부터 사도세자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혜경궁은 "더 이상한 일은 영조께서 사도세자가 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말씀하시면 사도세자는 마치 그 말을 따라 하듯이 그대로 행동했다"고 했다.

 

온천으로 떠나기 전에는 다 죽어가던 사도세자가 궁궐을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둥행렬이 민가에 폐르르 끼치지 못하도록 엄하게 명령을 내렸고, 지나는 길에서는 백성들에게 위엄과 은혜를 보였다. 심지어 충청도 사람들 중에는, 세자가 저지른 잘못에 한 맺힌 사람이 많다는 서울 사람들의 말을 무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다(대천록). 백성들은 길에서 본 세자를 훌륭한 임금이라고 칭송했다.

 

영조는 세자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주 한쪽에 돌을 괴어두고 수시로 뒤주를 흔들어보게 했다. 그렇게 뒤주를 흔들면 세자는 그때마다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다가 칠 일째에는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흔들었다. 그랬더니 뒤주 속에서 신음처럼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흔들지 마라. 어지러워 못 견디겠다." 뒤주에서 세자의 시신을 꺼내놓고 보니, 그 속에 반쪽짜리 부채가 접힌 채 있더라고 했다. 누가 넣어주었는지 몰라도 갈증을 견디지 못한 세자가 부채에 오줌을 받아 마셨다는 것이다.

 

사도세자는 갔지만 그의 죽음은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남았다. 더 욱이 아들 정조가 임금이 되면서 사도세자 사건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 현안이 되었다. 정조는 가해자인 영조의 손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다. 가해자가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고 피해자가 옳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이 모순적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권력은 수중에 넣기 전에는 자기 것이 아니지만, 일단 소유하면 주체와 대상의 동일화가 일어난다. 내가 권릭이 되고 권력이 내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원래부터 자기 것어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원래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니 오로지 자기만이 가질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논리가 비약하기도 한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인간은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 죽음이 두려워 평생 '죽을 사'자와 '돌아갈 귀'자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던 영조도 죽었다. 권력은 때가 되면 놓아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죽을때를 모르는 것처럼 권력도 놓을 때를 알지 못한다. 권력이라는 보석은 크고 화려한 것도 있지만 작고 소박한 것도 있다. 작고 소박한 것조차도 못 놓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큰 것을 포기하기란 정말 힘들다. 더욱이 크고 화려한 보석을 버리면 그 후광을 입던 사람들까지 모두 빛을 잃는다. 그래서 그들까지 가세해 권력을 포기하지 않게끔 부추기고 만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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