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Posted in BookLog // Posted at 2013.07.23 10:22

 

 

게랄트 휘터 저/이상희 역 | 추수밭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뇌 과학자가 쓴 철학적인 에세이 같은 책이다.

이런 류의 책은 주위를 조용하게 만들어 놓고 내용 하나하나를 집중해 가며 읽어 나가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기준에 맞춘 획일적인 동기부여가 사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사회적 기관으로써의 '뇌'라는 관점은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되짚어 보게 만든다. 또한 뇌는 단순히 반복적인 훈련으로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호기심과 열정이 어울어져야만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책의 제목대로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명제를 뇌 과학과 인문학적 문체로 풀어 내고 있다.

 

새끼 고양이에게 쥐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답시고 학습 프로그램을 짠 뒤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 관찰만 하게 하고, 나중엔 꽉 움켜쥐는 법을, 마지막으로 쥐를 꿀꺽 삼키는 법을 연습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새끼 고양이는 이런 것들을 저 혼자 배운다. 옆에서 자꾸만 방해하지 않고, 쥐 잡는 기술을 익히고 연습할 공간을 허락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쥐잡기에 능숙한 다른 고양이를 관찰할 기뢰를 얻는 것이다. 이는 포유류 전체에 해당된느 이야기다. 포유류의 경우 개개의 종 고유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뇌의 내부 구조가 유년기에 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완성된다. 심지어 사람의 아이는 훗날 삻에 필한 거의 전부를 몸소 경험함으로써 배워야 한다. 그러면 이 경험들은 특정 회로 패턴의 형태로 뇌 안에 자리를 잡는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갑자기 그 해결책을 깨닫거나 아니면 남들한테서 보고고 배울 때 아이들은 가장 빨리 새로룬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감이 커지며너 신뢰, 즉 타인에 대한 존중심과 유대감이 확고해지고, 좀 더 힘든 새로운 도전에 맞설 용기가 생긴다.

 

다른 사람들을 그 길로 이끌고 싶다면 그들을 격려하고, 능력이 된다면 영감을 주어서 그들이 자신과 타인을 새로이 경험하고, 학교나 일터 등지에서, 또 삶을 일구어 가는 과정 속에서 새 경험을 쌓으려는 의욕이 들도록 해야 한다. 반면 대부분의 회사 간부나 교육자, 교사들은 타인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부단히 애를 쓰는데, 뇌 기능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무의미한 짓으로, 자기 책임감을 길러 주거나 스스로를 만들어 가도록 하기는커녕 기껏해야 훈련을 통해 짜낸 성과물을 내놓게 할 뿐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조련사의 기대와 명령에 억지로 순응한 결과물인 셈이다. 타인에게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사람은 엄밀히 말해 자기 생각대로 그들을 형성하고 가르치고 써먹으려는 것이다. 이는 고유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격력하고 영감을 주는 것과는 무관한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세기의 세계상과 인간상에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부모와 교사, 경영자들은 최대한의 자원 착취를 지향하는 사회를 머릿속에 품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듯 가르치고, 경쟁을 부추기고, 전문가 바보를 양성하고, 의존적 관계를 만들어 내고, 엄격한 위계질서와 출세의 사다리를 세워야 한다. 또 아직 남아 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새로운 조치를 취하고 규칙을 만들고 통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구식 모델은 단기적으로는 더러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볼 때는 언젠가 벽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조직 및 관리 구조의 대상으로 전락한 피고용자, 임금노동자, 환자, 학생, 연금생활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조직으로 편성되고 관리 대상이 되는 경험을 자주 할수록 고유한 가능성을 찾고 고유한 삶을 창조해 가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체험할 기회는 더욱 줄어들게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런 일이 일찍부터 집중적으로 벌어질수록 당사자는 그러한 능력을 스스로 발달시키는 일에 훨신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결과 조직 및 관리 구조라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사회적 쳇바퀴 속에서 일생 동안 갇혀 지내게 된다.

 

처음부터 남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천성적으로 악하고 폭력적인 사람은 없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본보기가 있고, 그런 부류들이 이익을 취하고, 그들을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세상이 존재하기에 그 같은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우리는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경쟁의 압력에 짓눌린 이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거나 잠재력을 발휘해 나갈 수 없으며, 오히려 경쟁을 부추긴 결과는 심화되는 전문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이다. 경쟁으로는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바보와 운동 선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교양을 쌓고, 다방면에 유능하며, 사려 깊고, 멀리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안정되고 침착하면서, 강인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을 배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경쟁의 압력이 짓누르는 환경에서 그런 인간으로 자라기란 힘들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같은 조건은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 경쟁이 만들어 내는 것은 획일적인 순응이지 복합적 능력이나 관계를 맺는 능력이 아니다. 이는 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유전자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인 유인원과 거의 차이가 없다시피 하다. 유인원과 인간은 모든 유전자 서열의 99.5%가 동일하다. 게다가 우리 세포핵 속에 똘똘 감겨 있는 유전자 대부분은 심지어 벌레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인간이 호모사피엔스라는 독자적인 종으로 존재한 이래, 즉 적어도 10만 년 전부터는 더 이상 우리의 유전자 구조에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해 만일 우리의 모든 것이 유전자에 좌우된다면 우리는 벌서 그때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자전거를 타거나 달까지 날아갈 능력도 있었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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